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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품위 있는 죽음'을 논할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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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품위 있는 죽음'을 논할때

입력
2002.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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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환자의 치료 중단’ 이 또 다시 의료계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1년 전 '회복 불가능 환자의 진료 중단'에 대한 윤리 지침을 덜렁 내놓아, 종교계와 시민단체의 반대 여론에 난타당했던 대한의사협회.

우리사회에 안락사 논쟁만 가져왔을 뿐 '상처'만 입은 채 뜻은 접었을 것이라 예상됐던 의사집단이 오히려 '세부지침 1보'라는 더 확장한 안을 내놓았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기 어려운, 더구나 현행법과 배치되는 민감한 주제를 의사들이 줄기차게 사회에 반복해 이슈화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정법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의사집단의 고집 세고 무모한 행동이라고 단순히 넘겨버려야 할까.

윤리지침의 밑바탕에는 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이 깔려 있다.

무의식 상태의 환자를 가족 요구로 퇴원시켰던 의사에게 살인(2심에선 살인방조)혐의가 적용된 사건이다.

이후 의사들은 가망없는 환자를 퇴원시키는 일에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윤리지침은 임종환자의 진료중단에 대한 공식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더 이상 제2의 보라매병원 사건의 희생자로 몰리지 않겠다는 그들만의 결연한 의지 표명이다.

'윤리지침'이 의사를 위한 단순한 안전판에 그친다면, 사실 우리는 생명의 고귀함만 강조하면 된다. 문제는 우리에게까지 보라매 병원의 후유증이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환자 가족은 더 이상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는, 인공호흡장치로 연명하는 환자를 이제 마음대로 퇴원시킬 수 없다.

중환자실에 혼수상태로 장기간 누워 있는 환자에게 더 이상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아 달라고, 의사에게 요구하기도 어렵게 됐다.

진료비 부담과 병 간호로 기진맥진해진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잘 알고 있지만, 그리고 연명치료가 의미없는 치료임을 잘 알고 있지만, 혹시라도 가족 동의를 얻을 때 배제됐던 또 다른 가족이 나쁜 마음을 품고 소송이라도 낼까 의사들은 소극적ㆍ 수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살 가능성이 있는 환자들이 중환자실에 장기입원 중인 식물인간 환자에 밀려 치료받지 못하는 사례까지 벌어지고 있다.

놀랍게도 몇몇 병원은 나름대로 윤리지침을 만들어, 치료할 의미가 없다고 판단되는 환자들을 가족 동의를 구해 과감히 퇴원시키고 있다. 살인죄를 감수하고 말이다.

바로 실정법의 틀 속에서 불안한 상태로 일어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법과 현실이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평소 돈만 밝힌다고 인식돼온 의사들이 양심을 걸고, 계속 권한 밖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우리사회도 이제 진지하게 그들과 함께 임종환자의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판단 능력이나 경제적 능력이 없는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가 걱정된다면,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확실하게 마련하면 된다.

더 이상 보건복지부 같은 방관자적 태도는 갖지 말자.

송영주 생활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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