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결국 민주당을 탈당했다.모든 국민이 세 아들과 측근의 비리, 소위 권력형 비리의 척결을 요구하자 내린 결정이다. 그러나 시기와 방법이 적절치 않아 국민의 호응을 얻는 데 실패한 듯 하다. 안타깝다.
첫째, 탈당의 시기를 잘못 선택해 그 진의가 왜곡되고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탈당의 목적은 '제왕적 대통령'으로 인한 권력 집중을 해소하고 그것이 가져온 권력형 비리의 원천을 제거하면서, 정쟁으로부터 벗어나 국정에 전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집권 직후나 뒤이은 수 차례의 국정 위기 때, 늦어도 지난해 11월 총재직을 사임할 때가 마지막 기회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국민이나 야당이 대통령의 탈당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였다.
그러나 이미 대선 과정에 실질적으로 돌입하고 이 과정에서 '음모론'을 빌미로 유력한 민주당 후보가 경선을 중도 포기했으며, '노풍'도 서서히 빠지는 상황이기에 그 순수성을 의심 받기에 충분하다.
세 아들 비리와 노무현 후보를 돕기 위한 '도마뱀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바로 그것이다.
둘째, 방법도 국민의 신뢰를 얻기에는 적절하지 못했다.
직접 사과 대신 비서실장을 통한 간접 사과는 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들의 대 국민 사과와 탈당 성명의 수준에도 못 미쳐 그 진의를 의심케 하는 빌미를 주고 있다.
자식 문제를 남을 시켜 사과하는 것은 당당하지 못하고 떳떳하지도 않다. 전임 대통령들은 좋아서 직접 국민 앞에 머리 숙여 눈물로 사과하고 싶었겠는가.
셋째, 사과 내용과 탈당 명분도 설득력이 없었다.
아들 비리에 대한 검찰수사 결과의 수용이나 중립적인 국정전념 약속은 국민의 의사와는 거리가 먼 대통령의 기존 입장을 확인하는 정도였다.
이미 시민단체들은 검찰의 철저한 구속 수사가 가능하도록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였고, 대통령의 국정전념을 위해서도 정치적 중립내각의 구성을 전제조건으로 하였다.
그럼에도 기존 각료의 탈당만으로 중립내각이 충분하다는 발표는 대통령과 내각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릴 뿐이다.
그러므로 이대로는 안 된다. 임기 말 국정표류와 대선 과정의 정쟁으로 나라가 파탄에 빠질 위험이 크다.
5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 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이제 대통령 탈당 이후 정부와 정치권, 국민은 새로운 각오로 지금의 난국을 극복해야 한다.
첫째, 대통령은 국민에 대한 사과가 신뢰를 받도록 아들들의 사법처리에 대해 마음을 비워야 한다.
미국에 체류중인 3남 홍걸씨의 자진 귀국과 대통령 가족의 연루 의혹이 있는 사건들에 대한 수사 협조, 검찰에 대한 '법에 의한 처벌' 요청 등 후속 조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둘째, 대통령은 실질적인 거국 중립내각을 구성해 중립적인 입장에서 선거관리나 월드컵과 같은 국가 사업에 전념해 탈당의 진정한 의지를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각료의 탈당만으로 기존 내각을 중립내각이라 강변한다면 야당은 물론 국민의 지탄을 면키 어렵다.
셋째, 국민은 민주화 이후 반복되는 권력형 부패, 대통령의 사과와 탈당 그리고 새 정권의 전임 정권과의 단절 노력이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대안을 모색해야 하겠다.
부패척결, 책임정치 확립, 정책정당의 제도화,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집중 해소 등에 대한 방안들이 제시되어야 할 때이다.
대통령과 국회 및 정당의 관계를 재정립해 탈당이 제왕적 대통령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고, 구조적인 권력형 부패를 원천 봉쇄하며, 정당도 책임정치의 주체로 거듭나 '보스 중심'에서 '제도 중심'으로 뿌리내리는 제도화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의 탈당이 대선 과정에 후보간의 경쟁을 통해 역설적으로 기존 권력비리를 철저히 척결하고 새로운 대안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후보, 정당, 시민단체,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 5년 주기로 반복되는 과거의 잘못된 유산을 청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김석준·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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