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향해 굳게 닫혀 있던 문을 마침내 열었다.”지난해 11월14일 오스트리아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5_0의 완승을 거두고 48년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터키의 세놀 귀네스(55)감독의 목소리에서는 벅찬 감격이 배어 나왔다.
국내 경제사정과 강력한 유럽축구의 틈바구니에서 1954년 스위스월드컵 본선 진출이후 세계축구와 인연이 없었던 터키는 90년대 경제적 안정을 바탕으로 급격히 성장, 2000년 유렵선수권대회 8강 진출로 세계 축구계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수비보다 화끈한 공격력에 승부를 걸고 있는 터키가 이번 월드컵에서 반월도(半月刀)를 찬 투르크 전사의 위용을 과시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세계적 골잡이 수쿠르와 조직력
터키축구의 최대 강점은 짜임새 있는 조직력이다.
96유럽선수권대회 멤버가 9명이나 남아 있을 정도고 대표도 월드컵 예선을 뛰어본 선수 30명중 갈라타사라이 소속이 9명, 페네르바제 소속이 5명일 정도로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을 자랑한다. 공격적인 3-5-2 전형이 기본이지만 강팀과의 경기에는 수비에 중점을 둔 4백을 쓰기도 한다.
터키공격의 핵심은 스트라이커 하칸 수쿠르(31ㆍ페르마). 장신(191㎝)을 이용한 헤딩슛이 위협적이고 스피드와 볼 컨트롤도 뛰어나 상대수비의 경계대상 1호다. 갈라타사라이 시절 13시즌 동안 198골을 넣었고 96~97시즌에는 무려 38골을 잡아 유럽축구 득점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월드컵 예선에서도 6골로 최다골을 터뜨렸다. 터키의 약점은 수쿠르가 막히면 공격의 실마리를 풀지 못한다는 점. 그나마 처진 스트라이커 역할을 하는 아리프 에딤(31ㆍ갈라타사라이)의 오른쪽 돌파에 기대를 건다. 최전방에 수쿠르가 있다면 골문은 루스트 레츠베르(29ㆍ페네르바제)가 지킨다.
96년부터 터키의 골문을 지키고 있는 레츠베르는 공중볼 처리와 1대1 대처능력이 탁월하다. 2000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부터 올리버 칸(독일)이나 파비앙 바르테스(프랑스)에 뒤지지 않는 세계 톱클래스 골키퍼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정된 수비와 중원의 약점
3백과 4백을 혼용하는 수비의 핵심은 알파이 오잘란(29ㆍ아스톤 빌라). 오잘란은 수비의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며 리베로로 나설 때의 공격력도 위협적이다. 마케도니아와의 예선전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했을 정도다.
테크닉이 뛰어난 아식 엠리(29ㆍ갈라타사라이)도 수비진에 무게를 더한다. 반면 미드필더진은 다소 약하다는 평. 패싱력이 뛰어난 플레이메이커의 부재는 터키의 아킬레스 건이지만 노장 에르잔 압둘라(31ㆍ페네르바제)의 활약에 기대를 걸고 있다. .
▼예상성적
현재 국제축구연맹(FIFA)랭킹 24위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터키는 본선 대진운도 좋은 편이다.
브라질 코스타리카 중국과 C조에 속한 터키는 최소한 조2위 이상의 성적으로 16강 진출을 예상한다.
16강에 진출한 뒤에는 최약체조로 꼽히는 H조(러시아 일본 벨기에 튀니지) 팀과 맞붙기 때문에 8강 진출도 내심 벼르고 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터키 축구의 역사
유럽과 아시아 대륙의 관문인 아나톨리아반도에 위치한 터키는 이미 영국과 그리스인들이 1875년 첫 축구경기를 가졌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터키인들에 의한 축구가 태동한 것은 20세기 초. 명문 갈라타사라이가 1905년 출범했고 페네르바제, 베시크타스 등 클럽팀의 창단이 잇달아 터키축구리그가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터키는 1923년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입하며 세계무대에 얼굴을 내밀었으나 54년 스위스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을 제외하고는 세계무대와 인연이 멀었다.
터키축구가 세계무대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정치ㆍ경제상황이 나아지면서 터키 축구리그에 유럽의 지도자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유럽의 명문팀들도 터키선수들을 눈여겨 보게 됐다.
62년 유럽축구연맹에 가입한 뒤 96년 처음으로 유럽선수권대회 본선무대를 밟은 터키는 이 대회에서 단 1골도 못 넣었지만 이후 유럽축구의 다크호스로 우뚝섰다.
명문 갈라사타이가 2000년 유럽축구연맹컵과 유럽슈퍼컵을 차지했고 2000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는 대표팀이 8강에 올랐다.
현재 대표팀에는 AC밀란, 파르마(이탈리아) 바이에르 레버쿠젠(독일) 등 유럽명문팀에서 뛰는 선수들이 상당수다.
인구 5,700만명의 터키는 프로팀 203개에 4,775명의 프로선수가 있을 정도로 축구열기가 뜨겁다. 종합일간지들도 매일 축구보도에 2개 면을 할애할 만큼 높은 관심을 쏟는다.
3월27일 한국과 터키 대표팀의 평가전이 끝나자 주요 일간지들이 평가전 결과를 1면에 보도했다.
역도에서 올림픽 3연패를 이룩한 ‘작은 헤라클레스’ 슐레이마놀루와 함께 터키 명문팀의 축구선수들은 젊은이들의 최고우상이다.
■귀네스 감독 인터뷰
세놀 귀네스(60)감독은 여론의 역풍을 뚫고 터키를 48년만에 월드컵본선무대에 진출시킨 뚝심의 승부사다.
월드컵 유럽 4조예선 홈경기에서 터키는 약체로 꼽힌 슬로베니아와 마케도니아에 3-3으로 비겼다.
이어 스웨덴과의 2차전에서도 어이없는 역전패를 당해 오스트리아와 플레이오프까지 치르게 되자 귀네스 감독을 경질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하룩 우루소이 터키축구연맹회장이 귀네스 감독의 경질을 반대했을 뿐 아니라 선수들은 귀네스 감독이 물러나면 뛰지 않겠다는 의사까지 표명하며 감독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선수들이 보낸 신뢰는 귀네스 감독의 최대 자산이었고 결국 최후의 승자는 귀네스 감독이었다. 귀네스 감독은 노장 대신 과감히 젊은 선수들을 기용하며 오스트리아를 연파,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다음은 3월 27일 독일 보훔에서 한국과의 평가전을 치른 귀네스 감독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한국에서 본선 경기를 치르게 됐는데.
“한국에서 경기를 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 본선을 앞두고 주최국 한국과 경기를 벌인 것도 본선 준비 과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터키 전력의 약점은.
“수비가 가장 큰 문제다. 한국과의 평가전에서 비긴 것은 그나마 좋은 결과다. 따라서 본선을 앞두고 수비라인 보강에 힘쓸 것이다. 공격과 미드필드에서 실수도 많다. 선수 개개인의 기술적인 문제지만 반드시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다.”
-본선의 목표는 무엇인가.
“16강 진출이 1차 목표다. 첫 경기인 브라질전에서 이기거나 비기기만 해도 16강 진출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2차 목표는 그렇듯이 8강과 4강 진출이다. 조 2위로 16강에 오를 경우 H조 1위와의 경기는 이길 자신이 있다.
-유력한 우승후보와 MVP 후보를 꼽는다면.
“쉽게 꼽을 수는 없지만 프랑스와 아르헨티나가 유력한 후보로 보인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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