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한 미국 에너지기업 엔론에 이어 최대 증권사 메릴린치의 ‘이메일’ 사건을 계기로 세계 자본시장의 심장부인 월 스트리트가 최악의 신뢰성 위기를 맞고 있다.미 경제 시사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월가는 얼마나 부패했는가’ 라는 최신호(5월 13일자) 커버스토리를 통해 투자은행 및 증권사 소속 분석가들의 파렴치한 투자자 배신행위가 신뢰와 투명한 정보를 생명으로 하는 월가의 금융시스템을 마비시켜 결국 미국 경제의 침체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월가의 모럴 해저드
이 잡지가 진단한 월가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는 상충하는 두 이해집단이 동일한 투자 분석가의 입을 통해 이익을 실현하려는 모순된 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규발행된 주식가치를 높이고 채권이자를 낮추려는 기업과 공모주의 가격을 낮추고 높은 채권이자를 받으려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 분석가들이 투자자를 속이고 자신이 속한 투자은행과 기업체의 이익을 위해 정보를 왜곡하고 있는 게 월가 위기의 근원이다.
미국 투자은행의 이 같은 업무 관행은 1920년대 대공황을 겪은 후 금융규제가 대폭 완화돼 시티그룹, JP모건, 체이스맨해튼과 같은 초대형 투자사들이 출현해 주식거래에서 금융대출, 연금관리까지 ‘모든 것’ 을 관장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중국장벽(Chinese Walls)’ 이라고 불리는 월가의 엄격한 업무분할 원칙이 모든 것을 한 지붕 안에서 처리하는 폐단을 막기 위해 도입됐지만, 1980년대 초부터 잇달아 터진 스캔들은 닷컴기업의 거품이 부풀대로 부푼 1998년말~2000년초 최고조에 달했다.
첨단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를 1,500에서 5,000까지 폭등시킨 닷컴 거품경제는 ‘산적 같은’ 행위를 일삼아 온 분석가와 투자은행들이 마구잡이로 이익을 취하려는 데서 생긴 자초한 무덤이라는 게 이 잡지의 분석이다. 이 기간 중 월가는 1,300여 업체의 기업가치를 2,450억 달러 이상 높여준 대가로 무려 100억 달러의 각종 수수료를 챙겼다.
이들 기업 중 상당수는 수익모델이 없는 사실상 유령회사로 곧 도산했다. 2000년 봄 거품이 꺼지면서 4조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기업가치를 날려버린 거품경제의 배후에는 투자자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의 돈을 갈취하려는 분석가와 투자은행의 결탁이 있었다는 분석이다.
▼검찰 수사에 오른 월가
도덕성 상실에서 비롯된 월가의 위기는 증권거래위원회(SEC) 등 미국 관계당국의 법적 제도적 규제강화를 불러 장기적으로 자본시장의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SEC는 분석가들이 투자은행측과의 접촉을 제한하고 그 내용을 공개토록 강제하는 새로운 규제조항을 8일 승인할 계획이다. 일부에서는 투자금융과 증시분석 업무를 분리하자는 획기적인 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국의 이 같은 단호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파헤쳐지지 않은 부패의 지뢰밭은 아직 도처에 널려 있다. 분석가들의 배임행위를 조사하고 있는 미국 11개 주 검찰과 SEC는 메릴린치가 은밀히 주고받은 이메일과 같은 내부정보를 수사 중이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분석가들이 투자은행으로부터 받는 각종 보수까지도 사법처리 선상에 오를 가능성이 없지 않다.
주 검찰에 따르면 분석가들은 자신이 올린 수익의 3~7%를 투자은행측으로부터 보장받고 있어 공정한 자문을 받을 권리가 있는 투자자들을 희생시켰다는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
투자자들에 대한 사기성 자문행위로 분석가들이 구속된 사례는 아직 없지만, 이에 대한 공분이 확산될 경우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메릴린치와 같은 경우가 다른 회사에서도 공공연히 자행됐다는 게 사실로 입증될 경우 월가가 받는 타격은 재정면에서 수십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달 24일 월가 보고서에 따르면 메릴린치는 이로 인해 20억 달러의 손실을 입는 것으로 추산됐다.
전문가들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천박한 관행이 결국 모두를 망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며 “월가가 최선의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과거의 명성과 신뢰를 유지해 나갈 때만이 가능하다” 고 말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메릴린치 이메일 사건이란
월가의 신뢰 위기는 미국 최대 증권사인 메릴린치가 투자자들에게는 매수를 권유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추천한 종목이 "쓰레기와 다름없는 주식"이라는 이메일을 사적으로 주고받은 것이 적발되면서 폭발했다.
이 사건으로 데이비드 코만스키 메릴린치 최고경영자(CEO)는 지나달 말 주주총회에서 이례적으로 공개사과했다.그러나 주 검찰을 포함해 증권거래위원회(SEC)전미증권업협회(NASD)등 관계당국이 투자은행의 업무관행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에 착수해 파문은 확산되고 있다.현재 월가 신용 사건과 관련,수사를 벌이고 있는 곳은 SEC NASD외에 뉴욕주 등 11개 주 검찰,상원금융위원회,엄청난 손실을 본 수많은 개인투자자의 변호사 등이다.주 검찰은 해당 분석가와 투자은행의 기소까지 검토하고 있다.
뉴욕 검찰은 진나달 조사 대상을 모건스탠리,살로먼스미스바니(SSB)등 다른 주요 증권사로까지 확대했다.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중 하나인 무디스는 7일 "메리린치가 기소될 경우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하겠다"고 밝혀 관련된 투자은행들의 무더기 신용하락을 예고했다.
황유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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