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기자가 됐어요?”어느날 딸아이가 따지듯 물었다. 갑자기 일이 생겨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동생네 맡겨둔 아이를 찾아 까만 하늘을 이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는 학교 마치고 몇 군데 학원을 돈 뒤 집 근처 이모네서 엄마, 아빠를 기다린다.
며칠 연이은 늦은 귀가에 화가 난 모양이었다. “이담에 크면 얘기해줄게. 그런데 오늘은 날이 흐려 별이 안보이네”라고 말을 돌렸다. 가슴이 아렸다.
며칠 전 만해도 “난 신문 만드는 엄마가 자랑스러워요”라고 말하던 아이였다.
늘 바쁜 엄마를 이해시키기 위해 어릴 적부터 “신문은 굉장히 중요한 건데, 엄마가 바로 신문 만드는 일을 한다”고 세뇌(?) 교육을 시켜온 덕이다.
말귀를 제법 알아들을 무렵부터 아이는 출근하는 내게 매달리다가도 “엄마가 회사 안가면 신문은 누가 만들지?”라고 물으면 울음을 뚝 그치고 “빠빠이”를 했다.
그러던 아이가 학교에 들어 저와는 사정이 다른 친구들을 사귀고부터는 “왜 나는…” “엄마는 맨날…”하는 말이 부쩍 늘었다.
바쁜 직업이 어디 기자 뿐이겠는가.
스스로도 잘해야 30,40점 밖에 주지 못하는 나의 서툰 엄마 노릇이 꼭 일 때문 만은 아니다.
갓 낳아서는 친정 부모께, 두 돌 지나 4년 가까이는 함께 살던 시부모께 아이 돌보기를 전적으로 맡기는 ‘호사’를 누린 탓이다.
지난해 말 시부모께서 고향으로 내려가신 뒤 ‘늦깎이 엄마’가 된 나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전쟁 같다.
학교 준비물은 왜 그리도 많고 까다로운 지, 엉뚱한 걸 챙겨보내거나 하루 이틀 늦게 보내기 일쑤다.
한 번은 여자는 분홍색, 남자는 파랑색 파일박스를 사오라고 했는데, 시내 문구점 몇 군데를 뒤져도 분홍색이 없어 주황색을 사 보냈다.
그날 밤 아이는 “다른 애들은 다 분홍색이더라”며 울상을 했다. 학교 앞 문방구에 맞춤 준비물이 구비돼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지만, 퇴근 후 부랴부랴 달려가면 문이 닫혀있는 일이 허다하다.
이제는 엄마의 “괜찮아” 타령에 적응이 됐는지 아이가 먼저 “괜찮아요. 딴 아이도 안 가져왔는걸” 한다.
요즘 학교에서는 급식당번, 청소당번, 어머니회 등 ‘호출’이 너무 많아 일하는 엄마들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다행히 마음 넓은 담임선생님을 만나 여지껏 한 번도 학교에 얼굴 내밀지 않고 버티고 있지만 나 대신 더 수고할 다른 엄마들을 생각하면 미안할 뿐이다.
언제나 일하는 엄마들이 마음 편히 아이 기를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날 아이는 엄마의 ‘일’을 문제 삼았던 것이 미안했는지 잠자리에 들기 전 “늦게 오는 건 싫지만 그래도 엄마가 자랑스러운 건 맞아요”라고 말했다.
가슴이 찡 해져 잠든 아이에게 귓속말을 했다. “고마워. 엄마도 더 노력할게. 사랑한다, 정빈아!”
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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