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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하얀포말이 쏟아지는 '물의 나라'…양양 미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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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하얀포말이 쏟아지는 '물의 나라'…양양 미천골

입력
2002.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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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나무 산막에 누웠다. 아무런 불빛도 없다. 칠흑 같은 어둠. 오감을 모두 동원해 감지할 수 있는 것은 바위를 돌아나가는 계곡의 물소리뿐이다.철철철…. 돌돌돌…. 사람이 만든 문자로는 표현할 수 없다. 그 소리에 영혼이 씻기는 것일까. 정신도 깜깜해진다.

분명 잠이 든 것은 아니다. 아니 잠을 이룰 수도 없다.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을까. 또 다른 소리에 어두워졌던 정신이 화들짝 밝아진다.

툭툭툭…. 분명하다. 비가 내린다. 빗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가 합쳐진다. 두 소리가 서로의 공백을 메운다. 묘한 변주가 시작된다. 쏴아아-.

한밤중에 미천골(강원 양양군 서면 황이리)에 든 나그네는 그렇게 소리로만 계곡을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곳은 분명 첩첩산중이 아니라 ‘물의 나라’라고.

뿌옇게 창이 밝아온다. 비는 조금 걷혔다. 거의 잠을 자지 못한 것 같다. 몽롱한 눈에 비치는 창 밖의 풍경은 밤새 머리 속에 쌓아두었던 선입견(?)을 강타한다.

앞산이 먼저 다가온다. 비구름이 안개처럼 산꼭대기에 걸쳐있고 그 아래로는 온통 연초록의 물결이다. 나무가 빼곡하다.

송곳이 들어갈 틈도 없을 것 같다. 고쳐 생각한다. ‘그래 역시 산속이었어.’

서둘러 산막을 나섰다. 안내판을 보니 계곡길이 10㎞가 넘는다. 8㎞ 정도는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고 나머지는 걸어야 한다.

무슨 계곡이 이리도 길까. 그것도 강원도의 거친 산자락에 있는 계곡이. 하지만 경사가 거의 없는 평지란다. 걸음을 옮겼다.

미천골은 일단 이름부터 재미있다. ‘아름다운 냇물’이 아니라 ‘쌀 냇물’이다. 계곡에 큰 사찰이 있었다.

선림원이라는 수도도량이다. 한때 2,000명에 가까운 수도승이 청정한 정기를 마시며 도를 닦았다.

스님들의 공양을 짓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쌀 씻은 물이 계곡물을 하얗게 만들 정도였다. 그래서 미천(米川)골이다.

10분 남짓 걸었을까. 왼쪽으로 축대가 보인다. 선림원이라는 큰 사찰의 터이다. 선림원은 신라 법흥왕 때 지어졌다. 그냥 터만 남아있지 않다.

약 3,000평의 터에 4개의 수도 흔적이 있다. 모두 나라의 보물로 지정돼 있다. 삼층석탑(보물 제444호), 석등(445호), 홍각선사탑비 귀부와 이수(446호), 부도(447호) 등이다. 깊은 산에 들어있지만 귀한 문화의 흔적이다. 계곡의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고 새삼 느낀다.

계곡 트레킹은 내내 물과 함께 한다. 길은 몇 개의 다리로 물길을 가로지르며 물과 바짝 붙어 간다.

지난 밤에 비가 꽤 내렸는데도 물은 투명한 색을 유지하고 있다. 자체 정화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물소리가 조금 틀려진다. 폭포이다.

계곡 건너편 산자락에서 떨어진다. 물줄기가 장하지는 않지만 갈지(之)자로 굽이치며 떨어지는 모습이 아름답다. 크기가 서로 다른 폭포가 수도 없이 많다. 길의 좌우에 널려있다.

벌통이 눈에 들어온다. 한두 개씩 보이다가 갑자기 많아진다. 수백 개가 한꺼번에 모여있기도 하다.

미천골에는 두 가지 명물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토종꿀이다. 피나무, 음나무, 층층나무 등 토종벌이 좋아하는 꽃나무가 이 골짜기에 가득 차 있다.

품질이 좋아 예로부터 나랏님에게 올리는 진상품이었다. 9월 하순부터 일반에 팔기 시작하는데 한 병에 20만 원을 호가한다.

약 2시간을 걸었을까. 자동차 출입금지 표지판이 길을 가로질러 놓여있다. 길이 조금 험해진다. 미천골 트레킹의 종착지이자 이 곳의 두 가지 명물 중 하나인 불바라기약수를 찾아가는 길이다.

불바라기라는 독특한 이름은 ‘불바닥’에서 유래했다. 약수 속에 철분이 많이 녹아있는데 철분이 녹슬어 약수샘 주변이 온통 빨갛다.

그래서 불바닥같다고 했고 불바라기로 발음이 바뀌었다. 불바라기 약수샘은 가파른 폭포 중간에 있다.

미끄럽고 위험해서 보통 사람은 접근이 어렵다. 하지만 고무관으로 연결해놓아 폭포 아래에서도 맛을 볼 수 있다. 철분을 포함한 탄산수이다. 설탕을 뺀 사이다 맛이 나다가 끝은 비릿하다.

돌아오는 길. 빗줄기가 굵어진다. 내리막길에서 눈은 좌우 산자락에 초점을 맞춘다. 밤과 마찬가지로 한가지 색이다.

검정이 초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정신이 점점 까마득해지면서 다시 귀로만 세상을 느끼기 시작한다. 쏴아아-. 생각을 또 고친다. ‘물의 나라’라고.

▽가는 길

홍천과 양양 사이의 큰 고개인 구룡령길(56번 국도) 옆에 위치해 있다. 수도권에서는 6번과 44번 국도를 갈아타고 양평-홍천을 거친 뒤, 신내4거리에서 우회전 56번 국도로 접어들면 된다.

샛길도 있다. 신내4거리에서 직진해 철정 검문소까지 간 후 우회전, 인제군 상남까지 간다.

상남초등학교쪽으로 우회전, 미산계곡을 끼고 도는 신설도로(446번 지방도로)를 택하면 홍천군 내면에서 56번 국도와 만난다.

대중교통수단은 불편하다. 양양에서 미천골 입구인 황이리까지 하루 5차례 완행버스가 운행한다.

▽쉴 곳

두 곳의 빼어난 숙소가 있다. 미천골자연휴양림(033-673-1806)과 계곡 한가운데 위치한 불바라기산장(673-4589)이다.

휴양림은 1993년 문을 연 곳. 나무와 돌로 지은 숲속의 집과 통나무집인 산림문화휴양관 등 모두 40여 개의 산막 객실이 있다.

크기와 주중ㆍ주말에 따라 요금이 다양하다. 3만 원에서 7만 원 사이. 기온이 오르면 야영장과 오토 캠프장도 운영한다.

야영은 1일 2,000원, 오토캠프는 5,000원이다. 불바라기산장은 통나무 산장으로 많은 단골 고객을 확보한 곳.

모두 3동의 객실동과 카페를 갖추고 있다. 저녁이면 주인의 재즈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먹을 것

양양읍 등으로 골짜기를 벗어나기 싫다면 사먹을 수 있는 음식은 별로 없다.

산막과 산장에 취사도구가 있으니 재료를 준비해 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한다.

불바라기산장의 카페에서 차와 함께 몇가지 음식을 판다. 돼지목살 바비큐(2만 원)와 산채정식(1만 원ㆍ2인 분 이상)이 대표 메뉴이다.

산 속에서는 이채로운 피자(2만 원)도 맛볼 수 있다. 미천골 밀봉원(033-672-3888, 1577)에서 토종꿀을 판매한다. 9월 하순부터 11월이 출하시기이지만 지금도 묵은 꿀은 있다.

미천골은 물이 많은 계곡이다. 비으 기운으로 굵어진 물줄기가 하얀 포말로 흘러내린다. 계곡의 이름처럼 쌀 씻은 물 같다.

양양=글 권오현기자

koh@hk.co.kr

■계곡 트레킹 하려면…

계곡 트레킹은 신록 혹은 단풍과 함께 해야 제 맛이다. 한여름의 더위와 한겨울의 미끄러움은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그래서 요즘이 트레킹의 제철이다.

가장 기본적인 준비물은 신발이다. 평탄한 길이면서 왕복 30분 정도라면 뾰족구두나 하이힐을 신더라도 견딜 수 있겠지만 1시간 이상을 걷는다면 그에 맞는 신발이 필수이다.

자신은 괜찮다고 우기면서 강행하는 사람이 많다. 결국 자기도 괴롭고 동행자에게도 피해를 준다. 트레킹을 위한 다양한 신발이 나와 있다.

그러나 일부러 구입할 필요는 없다. 발목을 감싸는 운동화 혹은 등산화 등이면 충분하다.

요즘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물 속에 있는 바위를 절대 밟지 말 것. 기온도 높고 땀도 난다고 해서 양말을 벗고 물에 들어갔다가는 곧바로 넘어진다.

봄과 여름 사이의 물이 끼는 얼음보다도 미끄럽다. 마른 바위와 젖은 바위의 미끄러운 정도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아무리 중심을 잘 잡는 사람도 평평하지 않은 돌 위에서는 어쩔 수 없다. 발을 물 속에 담그고 싶다면 물 밖으로 드러난 바위에 걸터앉아 몸의 무게 중심을 물 바깥으로 유지한 채 발만 넣어야 한다.

가족 트레킹이라면 특히 아이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주어야 한다. 물을 꼭 건너야 할 필요가 있다면 징검다리를 놓거나 돌이 아닌 모래 지역을 골라서 건너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능한 한 옷을 얇게 입는 것이 좋다. 산림욕을 위해서다. 옷이 얇을수록 나무와 산의 기운을 잘 받을 수 있다.

물론 기온의 변화에 대비한 여벌의 옷을 준비해야 한다. 인적이 거의 없는 길이라면 웃옷을 아예 벗어보기도 한다.

■길에서 띄우는 편지

낚시를 좋아했습니다. 코흘리개 때부터 어른들을 따라 물가에 다녔으니 꽤 고참인 셈이죠.

심각한 수준의 광(狂)이었습니다. 초등학생 신분으로 고속버스와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또 한참을 걸어서 ‘잘 나온다’는 저수지라면 몽땅 찾아 다닐 정도였습니다.

밥상에 앉으면 국그릇에서 찌가 쑥 올라오는 착각에 빠지곤 했죠.

그런데 어린 시절의 낚시는 사실 낚시가 아니었습니다. 낚싯대를 6~7개 뽑아 부채살처럼 물 위에 펼쳐놓고 가장 양심적이지 못한 채비를 달았습니다.

물고기가 좋아하는 미끼라면 가리지 않고 물에 뿌리고 바늘에 달았습니다. 낚시꾼이 아니라 물고기 사냥꾼이었죠.

그러다가 큰 변화가 왔습니다. 훌륭한 스승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어느 겨울 서울 근교의 저수지에서 얼음낚시를 하다가 물에 빠졌습니다. 위험천만이었죠. 그 때 어떤 분이 목숨을 걸고 구해줬습니다.

인연이 돼 가끔 낚시를 함께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분의 낚시 방법은 전혀 달랐습니다. 낚싯대 딱 1대, 바늘 딱 1개가 장비의 전부입니다.

떡밥도 대추알만큼만 반죽합니다. 그러나 조과는 탁월했습니다. 집어력을 분산시키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부끄러워지면서 하나 둘 대를 줄이기 시작했고 몇 달 가지않아 결국 그분처럼 1대 만을 드리우게 됐습니다.

‘1대 낚시’를 하면서 물고기를 잡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주로 밤낚시를 할 때입니다.

밤에는 찌에 형광막대(소위 케미라이트)를 답니다. 물 위에 케미라이트만 떠있고 사위는 먹물 같은 어둠 뿐 입니다.

찌를 맹렬하게 응시합니다. 딱 1개이니까 저절로 집중이 되죠. 먹물은 점점 농도를 더해 갑니다. 더 맹렬하게 응시하면 찌의 밝은 빛까지 먹물에 파묻힙니다. 더 집중하면 아무 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사고도 정지됩니다. 무아의 경지가 이럴까요. 일종의 희열이 등줄기를 타고 내립니다. 낚시터를 찾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됐습니다.

미천골 산막에 누워서 눈이 아니라 귀로도 비슷한 희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단 한번도 끊어지지 않는 계곡의 물소리가 인도했습니다.

소리에 집중할수록 어디로인가 하염없이 빠져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밤낚시를 할 때처럼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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