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한국어 붐이 일고 있는 지금이 기회다.”한글의 세계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국내외 학자나 국제전문가, 외국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경제 회복에 이은 도약과 함께 월드컵 개최를 통해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학습 붐이 자연적으로 일고 있는 지금이 한국어 세계화의 기본방향과 초석을 다질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최근 중국이 ‘조선어’라는 명칭을 ‘한국어’로 바꾼 뒤 교재개선을 요청한 데 이어,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한 미국 고교가 올해만 20여개교가 더 늘어 50여개교에 이르고 있는 것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한국어세계화재단 이익섭(李翊燮) 이사장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 영어붐 이상으로 한국어 붐이 이는 등 전체 사정이 나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세계속에 한국어의 위상을 정립할 기회”라고 말했다.
▼체계화 효율화 시급
한국어 세계화의 우선 시급한 과제는 각종 국내 관련사업과 지원의 체계화와 효율화다.
현재 해외 한국어 보급 및 교육에는 문화관광부를 비롯, 교육인적자원부 외교통상부 등의 부처가 관여하고 있고 국제교육진흥원, 국립국어연구원, 한국산업인력공단 등 산하 10여개의 단체가 관련사업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수십개의 대학연구소 및 어학원, 학회 등이 활동하고 있는 등 그야말로 ‘난립’해 있는 상황이다.
교재개발과 한국어교사 양성, 외국인교사 연수 등의 주요 사업들이 효율적으로 전개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전주교육대 서혁(徐赫)교수는 “중복투자, 연수생 중첩 등 인적ㆍ물적 자원의 낭비가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전체를 총괄하고 각종 사업을 효율적으로 교통정리할 수 있는 주체를 정하는 등의 체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정부와 관련단체, 학계와 기업 등이 참여하는 ‘한국어세계화를 위한 특별위원회’ 형태의 기구를 설치하는 안이 제기되고 있다.
▼네트워크 구축 절실
선진국에 비해 낮은 국가위상, 빈약한 예산 등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해외 한국어교육기관 및 단체의 네트워크 구축’은 우선 서둘러야 할 사업중의 하나다.
대학 등 400여개의 정규기관과 한글학교 등 1,800여개의 비정규기관을 묶는 네트워크화는 상호간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세계화는 물론 각종 연구과 지원의 효율화를 극대화할 수 있다.
또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핵심축의 역할을 할 ‘권역별 거점’론이 거론되고 있다.
울산대 한영균(韓榮均)교수는 “전세계를 역사 지리 사회문화 정치경제 특성을 바탕으로 동부유럽 동남아시아 남북아메리카 등 10개 권역으로 분할, 각 권역에 한국어교육 및 연구성과를 공유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단위기지를 설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고려대 성광수(成光秀)교수는 “국내외 연구결과가 보다 효과적으로 호환, 결집될 수 있도록 네트워크역할을 하는 일종의 정보센터가 설립돼 종합적 연구의 구심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투자와 기업 참여
독일의 해외문화원 연예산은 3억유로(약3,300억원)이고 이중 80%(약2,640억원)는 괴테하우스 등 독일어를 가르치는 데 투입된다. 반면 문화관광부의 올해 ‘한국어 해외보급’예산은 7억여원에 불과하다.
독일출신 귀화인 이참 ㈜참스마트 대표는 “독일제품이 해외에서 높은 가격에 팔리는 데는 적극적인 언어 보급으로 고급스런 이미지와 브랜드를 형성한 것도 큰 몫을 했다”며 “한국정부도 적극적인 한국어 보급을 위해 연 1,000억원이상의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의 해외 자국어보급 지원비용의 50%는 기업의 기부로 충당된다. 그러나 한국기업이 한국어 보급을 위해 지원을 한 예는 거의 없다.
이익섭 이사장은 “한국어의 보급만큼 확실한 경제적 성과를 가져오는 것도 드물 것”이라며 “한국기업들도 보다 중ㆍ장기적이면서 민족문화보급 차원에서 한국어 세계화에 적극 관심을 가지고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한글 홍보대사들의 각오 한마디
▼배한성(55ㆍ성우)
우리 사회에서 쓰는 말이 부쩍 거칠고 사나워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엽기’ 등의 말은 방송에서 쓰지 않았다.
조폭적(?)인 표현이 늘더니 사회 곳곳이 헝클어진 같다. 성우로서 말을 망가뜨린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외화를 녹음하며 이상한 억양으로 국적불명의 말을 양산했고 튀어보려고 자극적이고 기교적인 언어를 구사하느라 애썼던 것 같다.
세종대왕께서 가장 미워하는 방송인이 되기 전에 우리 말글 지킴이로 정신 차려야겠다. 홍보대사는 성우인 내게 뭔가 해야 한다는 부담을 주지만 부담은 곧 보람이 될 것이다.
▼차두리(22ㆍ월드컵대표)
누나 ‘하나’와 내 이름은 우리 말과 글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이 담겨 있다. 아버지를 이어 월드컵에 출전하고, 한글을 홍보하는 대표까지 맡으니 가슴이 벅차다.
초등학교 4학년때 귀국해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별 어려움 없이 곧 수업을 따라 갔다. 한글은 어느 나라 글보다 쉽게 배울 수 있는 과학적인 글이라고 생각한다.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16강에 진출하는 것도 한글홍보의 하나로 생각한다.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우수한 우리 한글을 세계에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 김사랑(24ㆍ연예인)
지난해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린 미스유니버스대회에서 궁중의상을 입고 나가 최고 민속 의상상을 받았는데 이번에 가장 자랑스런 문화유산인 한글을 홍보하는 임무까지 맡게 돼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유니버스대회에 참가했을 때 내 이름의 뜻을 설명해 주니 외국친구들이 예쁘다고 부러워했다. 국악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평소에도 우리 문화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해외에 나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국 친구들에게 우리의 아름다운 말과 문화를 소개하는 데 노력하겠다.
▼미즈노 순페이(水野俊平·34·일본인ㆍ전남대 전임강사)
아직도 한ㆍ일 양국간엔 넘지 못하는 장벽이 존재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언어를 몰라 서로의 본심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대마도에서 조선외교를 담당한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는 “조선실정을 모르면 실무에서 성과를 거둘 수 없고 그 말도 부언(浮言ㆍ실속 없는 말)으로 끝난다”고 말했다.
보다 성숙된 한ㆍ일관계를 위해 많은 일본 사람들이 한글과 한국어를 알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글과 한국어의 일본보급은 중요하다. 이 기회를 통해 한글과 한국어의 일본홍보에 매진할 각오이다.
■"한국어 쉽게 배워요"
“안녕하세요.” “화장실이 어디입니까”
우리나라를 처음 찾는 대다수 외국인들은 이 같은 초보적인 한국어도 알지 못한다. 외국인들이 게을러서 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기본적인 한국어를 쉽게 익힐 수 있는 학습프로그램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우리의 안이함이 더 크다.
한글학회가 기초한국어 학습프로그램 ‘이도시스템’은 지금까지의 게으름에 대한 조그마한 뉘우침이다.
세종대왕의 본명인 ‘이도’를 따 이름 붙여진 이 프로그램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200여 개의 기초 필수 문장을 인사, 길찾기, 식당, 쇼핑 등 10여 개 상황으로 나누어 익히도록 했다.
또 사용빈도가 가장 높은 400여개의 단어를 수록했고 모음과 자음의 구성과 기본 쓰임을 쉽게 익히도록 했다.
특히 실생활에서 곧바로 활용 가능한 학습이 되도록 ‘발음 학습 도구’기능이 갖춰져 있다. 자유자재로 한국인 발음의 문장과 단어를 들을 수 있으며 학습자의 발음을 녹음, 비교도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글단어나 문장을 클릭하면 ‘표준발음’창에 파형이 나타나는데 이것과 학습자의 발음파형을 시각적으로 비교, ‘좋음’ ‘매우좋음’ ‘뛰어남’ 등의 평가를 받아 학습자 혼자서 충분히 발음공부를 할 수 있다.
국내 벤처기업인 ㈜앤투가 9개월에 걸쳐 개발한 이도시스템은 영어 중국어 일어 등으로 제작됐으며, 기본적인 한국역사와 문화, 관광정보 등을 수록해 해외에 진출하는 국내기업이 현지에서 한국과 기업을 알리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한글학회는 “이도시스템은 한글과 한국어는 물론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의 선구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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