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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팔봉비평문학상 남진우 "時의 죽음에 맞서는 시인의 운명에 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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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팔봉비평문학상 남진우 "時의 죽음에 맞서는 시인의 운명에 매혹"

입력
2002.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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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시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제13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남진우(42)씨는 묻는다.

로마 제국의 재사 오비디우스는 “육체보다 귀한 내 영혼은 죽지 않고 별 위로 날아오를 것이며, 내 이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변신 이야기’에서)이라고 단언했다.

이 고대의 시인이 예언한 ‘불사(不死)의 영광’은 그러나 추억이 돼버렸다. 최근 몇 년 새 시인은 소멸의 공포로 떨어야 하지 않았던가.

남진우씨는 그러나 “시는 그 기원에서부터 위기를 먹고 죽음을 사는 독특한 생존 방식을 택해왔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문학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사실의 하나는 모든 뛰어난 문학적 성과는 바로 ‘위기적 시간’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시에게 위기는 일용할 양식이며 죽음은 일종의 운명이라 할 수 있다.”

수상작인 ‘그리고 신은 시인을 창조했다’(문학동네 발행)는 그렇게 위기적 시간에 맞서, 시의 죽음에 맞서 싸워온 시인들의 작품 세계를 성찰한 것이다.

남씨의 네번째 평론집으로, 앞서 낸 세 권의 비평집이 시와 소설을 함께 다뤘던 것에 반해 이번에는 시인들에 대한 분석만 묶었다.

서정주 정현종 강은교 김기택 이진명 유 하 등 20명 시인들 작품의 내밀한 결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그 방식은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이기도 한 남씨 특유의 시적이고도 힘있는 문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시인 김기택씨의 시 세계를 설명하는 몇 구절. “김기택의 인상적인 시에는 잘 조율된 악기의 현에서 느낄 수 있는 어떤 긴장된 힘이 충만해 있다.

언어는 정확히 요소요소에 배치돼 있으며 이미지는 야단스럽지 않게 숨어서 은은한 빛을 발산하다. 어휘와 어휘 사이엔 틈새가 거의 없으며 행과 행, 연과 연 역시 긴밀하게 맞물려 구조적 긴박감을 자아낸다.

” 누군가는 남씨를 두고 “시를 쓰듯 평론을 쓰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자신 “시보다도 더욱 시적인 평론을 쓰고 싶다는 것이 욕심”이라고 털어놓는 평론가다.

그만큼 그의 문장은 유려하다. 성실하고 꼼꼼하게 텍스트를 읽어내고, 텍스트의 이미지를 시적인 언어로 구축하는 작업에서 남씨의 미문(美文)은 커다란 무기가 된다.

그는 평론가로 등단하기 전 이미 시인이었다. 고교 시절 ‘학원’ 세대로 필명을 날렸던 문학소년은 시인이 아닌 자신을 꿈꾸었던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30대 초반 시로부터 한없이 멀어지기를 바랐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끔찍하게 피로했다. 다 내려놓고 싶었다. 그런데 극도로 삶이 피폐해지니, 시가 흘러 나오더라.”

그때 두번째 시집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상재했다. 그는 창작이 그러하듯이 비평 역시 매혹을 요구한다고 했다.

“다루는 대상에 대한 매혹 없이 비평에 뛰어드는 것은 사랑의 열정 없이 누군가와 연애하는 것과 같다.”

죽음의 위협과 싸워 나가는 오늘의 우리 문학을 두고 남씨는 이렇게 말한다.

“문학이 중심에서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어느 나라에서나 겪는 일이다. 최근 전개된 ‘문학권력’ 논쟁도 이런 ‘문학의 주변화’ 현상의 징후일 것이다. 비평만 해도 그렇다. 문학비평이 유일했던 때는 지나고 사회비평, 영화비평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비평작업이 수행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날카로운 비판이 이어진다. “그러나 그 다양한 분야에서 아직껏 김우창이나 김 현이나 백낙청 같은 인물이 나오지 않았다. 어떤 분야든 비평을 한다는 사람들이 문학을 ‘힘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면 문학에 무지하다는 얘기다.”

그는 소설가 신경숙씨의 남편으로도 잘 알려졌다. 유명한 소설가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어떻느냐고 짓궂게 물었다.

남씨는 “신경숙씨가 소설을 쓰는 작업을 지켜보노라면 종종 놀란다. 배울 것이 많다”고 진지하게 답했다.

수상 소감을 묻자 남씨는 제1회 팔봉비평문학상 시상식이 떠오른다고 했다. 수상자 고(故) 김 현은 병석에 누워 식장으로 나오지 못했다.

“시상식에 참석해 대독하는 수상소감을 들었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상을 받게 되다니, 말할 수 없이 기쁘다.”

■약력

▲1960년 전북 전주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ㆍ대학원 졸업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 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 당선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평론 ‘연금술사의 꿈-정현종의 시세계’ 당선

▲평론집 ‘바벨탑의 언어’ ‘신성한 숲’ ‘숲으로 된 성벽’ 시집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 ‘죽은 자를 위한 기도’ ‘타오르는 책’ 등

▲대한민국문학상(1990) 동서문학상(1995) 김달진문학상(1998) 소천비평문학상(1999) 현대문학상(2001) 수상

김지영기자

kimjy@hk.co.kr

■심사경위

제13회 팔봉비평문학상을 준비하면서 평론가들이 이렇게 많이 늘어났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다시 하게 되었다.

최근 10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는 평론가들이 급속도로 증가했으며, 그 결과로 평론집 역시 양산되고 있다.

그래서 남의 글을 읽는데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심사위원들조차도 준비된 리스트에 등장하는, 상당수 평론가의 이름을 처음 접하는 이름이라고 고백하는 일이 근자에는 자주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은 왜 일어났을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평론과 대학이 맺고 있는 관계 때문이다.

대학에서 문예창작과, 혹은 문예창작의 성격을 지닌 국문과가 늘어난 사실과 여기에서 요구하는 인력이 갖추어야 할 자격이 평론가를 양산하게 만드는 일차적 요인이 되고 있다.

이와 함께 대학이 업적평가 제도를 갖추면서 교수들에게 요구하는 연구업적이 평론집 양산의 2차적인 이유가 되고 있다.

대학교수로 취업하기 위해서, 연구업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목적에서 평론가와 평론집이 양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13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를 결정짓기 위해 작성된, 지난 1년 동안에 간행된 평론집 목록에는 50여명의 평론가 이름이 등장했지만 1차 본심에서 집중적으로 검토할 6명의 후보자를 확정짓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따르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비평활동과 현장비평에 대한 충실성 여부 등을 고려하면서 김정란, 남진우, 박혜경, 윤지관, 이동하, 황국명씨를 선정하는데 김윤식, 김병익, 염무웅, 김치수 네 분 평론가들은 손쉽게 합의했다.

4월 27일에 열린 2차 본심은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주장을 날카롭고 끈질기게 펼치는 자리였다.

김윤식 위원장의 유도에 따라 심사위원들이 돌아가면서 2명씩의 평론가를 추천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한 결과 남진우, 윤지관, 박혜경씨가 남게 되었으며, 이후 이 세 사람에 대한 토론이 한참 동안 이루어졌다.

남진우가 지닌 현란한 비평적 감각과 문체, 그리고 윤지관이 지닌 이론비평의 의미와 현장성 문제를 두고 이루어진 논란 끝에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는 아니지만 남진우를 13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는 데 모두 아름답게 동의했다.

홍정선 인하대 교수

■심사평

1년 동안에 출간된 비평집이 50여 권에 달한다는 사실을 통해서 소문과는 달리 한국 비평이 양적으로 증감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제일 먼저 예년의 심사 원칙을 따르기로 하고 1차로 6명의 비평집 7권을 선정하여 보다 면밀한 검토에 들어갔다.

그 결과 이들 비평집들이 수상작이 될만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지만 각각의 비평집이 지니고 있는 장단점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의견이 모아졌다.

어떤 비평집은 문학적 열정과 독창적 관점이 인정되지만 비평적 포괄성이 미흡하다는 의견이 나왔고, 다른 비평집은 동시대의 문학적 현상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있으나 자기 목소리로 인정될 만한 스타일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고 이야기되었다.

어떤 비평집은 오늘의 문학적 쟁점을 일관된 관점에서 진단하고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내세우고 있으나 작품 분석이 뒤따르지 않아 이론에 치우치고 있다는 평을 받았고, 또 다른 비평집은 작가와 작품의 정확한 분석과 설득력 있는 해석과 세련된 문체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으나 동시대의 문학 현상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결핍을 지적 받기도 했다.

이러한 토론을 거치면서 심사위원들은 비평의 수준에 대한 이견을 좁혀 가는 가운데 남진우씨의 ‘그리고 신은 시인을 창조했다’를 제13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동시대의 시인들만 다루고 있는 이 비평집은 한국어의 풍요로운 상징성과 한국 시의 새로운 형식과 한국인의 삶의 심층적 이미지를 개개의 시인들에게서 찾아냄으로써 한국의 시적 풍토의 비옥성을 입증하고 있다.

그는 시를 ‘절대에의 욕망’의 표현으로 보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사라지는 운명을 지니고 있지만 그 사라짐을 통해서 자기 존재를 입증하는 역설을 시에서 읽어냄으로써 깊이 있는 시적 상상력과 예리한 분석력을 보인다.

그의 상상력은 죽음 밑에 감춰져 있는 생명을 읽어내고 그의 언어는 척박하게 보이는 오늘의 시의 세계에서 끝없는 샘물을 길어냄으로써 동시대의 다양한 시와 시인을 감싸안는다.

그의 비평은 일정한 관점을 가지고 이들 시인들을 오늘의 시적 현상에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의 비평집이 시론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그 전에 나온 비평집을 고려할 때 그의 문학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비평적 성과로 평가될 수 있다는 데 의견이 모아져서 그의 비평집을 금년도 팔봉 비평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심사위원=김윤식 김병익 염무웅 김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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