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새벽 4시. 아파트 단지마다 불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최경주(슈페리어)가 한국골프사에 한 획을 긋는 모습을 보기 위해 팬들이 생중계 시간에 맞춰 TV 앞에 일제히 자리한 것이다.11번홀(파5)의 그림같은 6m짜리 버디퍼트, 그린 전방 128야드 지점에서 때린 세컨드샷이 컵 턱에 걸린 16번홀(파4)의 마술같은 어프로치샷, 그린 뒤쪽 10.5m 프린지에서 갖다 댄 칩샷이 그대로 컵에 빨려 들어간 17번홀(파3)의 절묘한 쇼트게임…. 최경주는 타이거 우즈 못지 않은 다양한 테크닉의 신들린 플레이를 구사, 국내 팬은 물론 현장의 갤러리까지 매료시켰다.
상보 최종 라운드에서 곧잘 무너졌던 최경주였지만 이날만은 전혀 달랐다. 컵 주변에 떨어지는 초정밀 아이언샷, 고비마다 어김없이 108㎜ 홀속으로 사라지는 정교한 퍼트, 오히려 추격자들이 무색해 할 정도의 공격적인 플레이, 입가에 머금은 미소…. PGA 투어 대회 첫 승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지만 긴장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4번홀(파4). 최경주가 우승에 시동을 거는 첫 버디를 잡았다. 하지만 전날 2명이었던 1타차 2위는 데이비스 톰스, 크리스 디마르코, 마이크 스포사, 브라이스 몰더, 댄 포스먼(이상 미국) 등 무려 5명으로 늘어났다.
8번홀(파3). 스포사가 칩샷 버디로 공동선두로 올라섰다. 순간 최경주도 7번홀(파4) 버디로 응수했다. 그리고 8번홀에서는 티샷을 벙커에 빠뜨렸으나 멋진 리커버리샷으로 파세이브에 성공했다.
10번홀(파4). 미국 대학무대를 휩쓴 몰더가 어이없는 4퍼트로 트리플보기, 우승대열에서 탈락했다. 11번홀(파5), 최후의 승자를 결정지은 승부처였다. 스포사가 2온하고도 파로 마무리, 공동선두의 기회를 날려보냈다.
반면 최경주는 그린 주변에서 굴린 세번째샷이 핀을 지나 내리막 라이를 타고 6m나 굴러갔으나 버디퍼트가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쳐 컵속으로 사라졌다. 비로소 2위 그룹을 2타차로 따돌렸다.
오길비가 15번홀 버디로 역시 13번홀에서 버디를 보탠 최경주를 다시 2타차로 추격해왔지만 16번홀에서 보기를 범하면서 3타차로 벌어졌다. 이후부터는 최경주의 원맨쇼였다.
우승을 확신한 듯 최경주는 경쟁자들이 잇따라 보기로 무너진 16ㆍ17번홀에서 오히려 환상적인 아이언샷을 구사, 줄버디를 잡아내 갤러리를 열광시켰다.
2위 그룹을 무려 5타나 따돌린 최경주는 마지막 18번홀에서 이날 유일한 보기를 범했지만 챔피언 등극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최경주는 갤러리의 환호속에 부인 김현정씨와 깊은 포옹으로 우승의 감격을 나눴다.
남재국기자
▼김대통령 축전보내
김대중 대통령은 6일 최경주에게 축전을 보내 “더욱 한국을 빛내고 조국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도록 정진해 주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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