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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으로 현실읽기] (4)레비 스트로스 '슬픈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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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으로 현실읽기] (4)레비 스트로스 '슬픈열대'

입력
2002.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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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을 앞두고 전 세계가 축구의 열기로 들끓고 있다. 그런데 만약 양 팀의 승부가 같아질 때까지 계속되는 축구 경기가 있다면, 그래서 이긴 팀도 진 팀도 없게 된다면, 그래도 사람들은 축구에 관심을 가질까?뉴기니에 사는 가후쿠-가마족의 축구 경기가 바로 그렇다. 우연한 기회에 축구를 배우게 된 그들은 양 팀의 승부가 똑같아질 때까지 며칠이고 계속해서 시합을 한다.

그들은 서양의 ‘축구’를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서구인들은 그들이 축구의 규칙조차 알지 못하는 ‘미개인’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승패에만 몰두하는 서구와 그것을 경쟁이 아닌 축제로 바꿔버린 원주민들 중 어느 편이 현명한 것일까?

한 문화의 체계는 다른 문화와 구별되는 고유의 특성을 지니기 마련이며, 따라서 모든 문화적 대상들은, 설령 그것이 의상이나 음식이라고 하더라도, 특정한 문화적 배치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가후쿠-가마족의 경우처럼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문명’의 유일한 기준으로 내세움으로써 그것을 척도화한다.

오랫동안 ‘문명=서구적인 것’이라는 공식은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 ‘문명/야만(미개)’이라는 우열 관계를 형성시켜 왔으며,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비서구적인 것을 서구화했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 자신도 그 흐름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세계인의 축제라는 월드컵과 올림픽, 심지어는 아시안 게임까지도 온통 서양의 게임이지 않은가.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는 서구인들의 ‘척도’가 어떻게 비서구 사회의 삶과 문화를 파괴해 왔는가를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여행기의 형식으로 씌어진 이 책에서 인류학자인 그는 자신이 1937년부터 약 1년 간에 걸쳐 브라질 내륙지방을 탐험하면서 만난 네 원주민 부족들(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의 삶과 문화를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20세기 중반까지, 아니 지금까지도 ‘미개’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원주민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서구인들의 폭력 때문에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그는 서구에 의해 파괴된 열대의 삶 앞에서 무한한 ‘슬픔’을 느꼈으며, 그 파괴의 주범이 자신이 속한 세계라는 사실에 절망했다.

‘열대’라는 타자를 통해 그는 비로소 자신이 속한 서구의 ‘야만적인’ 참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책의 첫 문장인 “나는 여행이란 것을 싫어하며, 또 탐험가들도 싫어한다”라는 구절이 단지 취향의 표시에 머물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구인들의 ‘척도’가 비서구 사회에 적용되는 방식은 매우 끔찍했다. 원주민들을 처음 발견한 탐험가와 선교사들은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 ‘미신이라는 미생물’로 가득 찬 동물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 ‘일하는 짐승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려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삶과 문화 전체를 파괴해야만 했다.

보로로족의 예를 보자. 그들은 원형의 거주 형태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원형이란 단순한 주거형태가 아니라 우주적 질서의 상징이었으며, 나아가 사회와 종교체계 전체의 근간이었다.

서구인들은 그들을 개종시키기 위해서는 이 원형의 주거형태를 파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마침내 그들의 주거형태를 평행으로 열을 이루는 직선 형태로 모두 바꿔버렸다.

이 변화로 인해 그들은 방향감각을, 그리고 나아가 삶의 모든 것을 잃었다. 물론 이 파괴는 문명화라는 명목 하에서 진행되었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과연 동양인인가? 우리 또한 서구화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 ‘근대화’를 민족적 운명을 건 과업으로 알고 추진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문화는 물론 가치관마저 모두 서구화되었다. 국제 대회들이 개최될 때면 식전행사처럼 반복되는 ‘개고기 논쟁’, 그 이면에도 서구의 문화적 가치만이 문명의 유일한 기준이라는 발상이 숨어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점차 ‘개고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들을 커지고 있다. 그 목소리 속에서 우리에게 내면화된 서구적 가치들의 흔적이 보인다. 과연 우리는 서구인들과 무엇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봉준 수유연구실+연구공간'너머' 연구원·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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