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세계로!’한국일보사는 한글학회와 손잡고 2002 월드컵과 부산아시안게임 등 초대형 국제행사를맞아 외국인과 재외 동포에게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전파ㆍ보급하는 캠페인을 벌인다. 21세기 지구촌 시대에서 한국어의 세계화는 단순한 문화 보급에그치지 않고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이다. 아울러 장기적으로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보이지않는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 본보는 이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재외 한국어 교육의 실태와 문제점 ▦재외 한국어 교육의 올바른 방향 ▦전문가 대담 등을 시리즈로 싣는다. /편집자 주 ≫
▽재외 한국어 교육 현황
지구상에는 3,500~8,000종의 언어가 존재한다. 100만 명 이상 사용하는언어는 138개. 유네스코 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100년 뒤 현존 언어 90% 정도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영원히 존재하는 언어는사용인구가 최소한 1억 명 이상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어 사용 인구는 언어별 순위로 14위 권에 자리잡고 있지만, 남ㆍ북한과 외국인, 재외동포를 망라해도 7,500여만 명에 불과하다. 자칫 우리 말과 글을 사용하지 못하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이러한 민족적 불행을 방지하기 위해서지금부터라도 한국어 사용 인구를 적극 늘려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외국인과 재외 동포를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육이 국내ㆍ외에서 정규ㆍ비정규과정으로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지만 크게 미흡한 실정이다. 미국 일본 중국 등 일부 국가가 한국의 경제력이 높아지면서 고교와 대학에 한국어 교과목을정규과정(400여 개)으로 속속 개설하고는 있으나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특히 외국에서 이뤄지는 한국어 교육은 대부분비정규과정(1,800여 개)으로 운영되고 있어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하는 데 애로가 많다.
독일 태생으로 25년 전 한국으로 건너온 뒤 한국인으로 귀화, 현재 사업과 방송활동을겸하고 있는 ㈜참스마트 대표 이 참(45ㆍ옛이름 이한우)씨는 “한국의 무역규모는 세계 13위라고 하지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전파ㆍ보급하는 데 쓰이는 국가예산은 100위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고말했다. 이씨는 또 “올림픽과 월드컵 등 대규모 국제행사를 거치면서 한국어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이 높아지고있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한국의 준비와 노력은 걸음마 수준에도 못미친다”고 안타까워 했다.
▽체계적인 한국어 교재가 없다
실제로 외국인과 재외 동포를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교육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아직 표준적인 한국어 교재와 사전조차 갖추지 못했다. 수년 전부터 서울대ㆍ연세대 등 일부 대학과 기관ㆍ단체에서 100여종의 한국어 교재를 만들어세계 각국에 보급하고 있으나, 재외동포가 많은 미국 일본 중국 등 일부지역 이외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재러동포 3세로 현재 서울 동숭동 국제교육진흥원에서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정바벨(24)씨는 “현지에서 한국어를 공부할 때 제대로 된 한국어 교재를 구하지 못한 데다, 한국어를 제대로 가르치는 강좌나 프로그램이 없어 애로가 많았다”고 말했다. 역시 이곳에서 3개월 단기과정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재중동포 3세 최 정(25ㆍ여)씨는 “중국현지에서 사용한 한국어 교재는 대부분 북한의 문법이 적용된 평양 교재였다”면서 “올바른 한국어보급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교재개발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텐진(天津)한국국제학교 박창배(朴倉培) 교장은 “텐진에는200여개의 한국기업이 진출해 있고 교민도 2만여명에 달하지만 제대로 된 한국어 교재 및 학습도구는 구경조차 힘들다”면서“텐진시 샛별조선족소학교의 경우 전북대 도움으로 한국내 유치원 교재를 구해 한국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실정”이라고전했다. 연세대 한국어학당 이희경(李熙京) 교학부장은 “국내에서 제작, 해외로 보내지는 상당수 한국어 교재는 해당 국가의 여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학습동기를 유발하지 못한 채 결국 책상서랍속에서 잠자고 있다”고 귀띔했다.
▽교사 자질 향상도 시급하다
한국어 교사 대부분이 어문학과 교수법을 배우지 않은 비전문가들이어서 수준 높은한국어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동선호(董善浩) 국제교육진흥원장은 “세계 각지의 한국어교육기관의 경우 절대적인 경비부족으로 월급을 제때 주지 못하기 때문에, 수개월~수년간 자원봉사로 참여하다 그만두는교사가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희경 부장은 “최근몇몇 대학ㆍ기관ㆍ단체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한국어 교사 연수ㆍ교육프로그램을 더욱 활성화해야 함은 물론, 국가 차원의한국어교사 인증제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인식 전환도 절실하다. 오래 전부터 자국어의 세계화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막대한 예산지원과 다양한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는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리는 부끄러울 지경이다. 재외 한국어교육 전문가들은 “문화관광부 교육인적자원부외교통상부 등 10여 곳의 기관ㆍ단체에서 주먹구구식으로 한국어교육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효율적인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월드컵 손님에게 '한국어 선물'
“한국을 찾는 외국인에게 한국말 한 두마디라도 배우도록 해야죠.”
‘한국어 교육의 전령사’가 모인 국제한국어교육학회의 신현숙(50ㆍ상명대 교육대학원장) 회장은 “월드컵을 구경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은 한국어를 선물로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학회가 문화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외국인 월드컵 관광객을 위해 만든 한국어 선물은 ‘월드컵 도우미-한국어 한마디'라는 휴대용 가이드북.
가로 9㎝, 세로 15㎝ 크기의 18쪽으로 만들어진 이 소책자는 인사하기, 물건사기, 길찾기, 지하철ㆍ택시타기, 음식점ㆍ숙박시설 이용하기, 약국 이용하기, 도움 청하기 등 20여 가지의 상황별 회화 표현을 삽화와 함께 담고 있다.
한글의 창제원리와 자음ㆍ모음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 한글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와 기본표현을 짧은 시간에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신 회장은 “학회 소속 외국어 전문교수와 한국어 교육자 등 수십 명은 이 소책자의 집필을 위해 지난 1년여 동안 무보수로 참여하는 열성을 보였다”면서 “외국인 관광객의 언어소통과 한국어 홍보에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문화관광부는 영어ㆍ중국어ㆍ일어ㆍ불어ㆍ스페인어 판을 1만부씩 제작, 전국의 공항과 월드컵 개최도시 관광종합안내센터 등에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다.
/김성호기자
■허웅 한글학회 이사장 인터뷰
“세계화다 국제화다 해서 우리 말과 글이 영어 뒷자리로 급속히 밀려나고 있어요. 정부 시책부터가 그랬으니 국민도 덩달아 영어를 못하면 죽는 줄 알아요. 큰 일이예요. 우리 말과 글이 일제시대 못지 않게 위기에 처해 있어요.”
한글학회 허 웅(84) 이사장은 “세계화를 위해 외국의 것을 받아 들이는 것도 좋지만 우리 것을 외국에 적극 내보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우리의 우수한 말과 글을 세계를 향해 퍼뜨리는 데 마지막 혼신의 노력을 쏟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세계 각국에 한국어를 알릴 절호의 기회를 이미 한번(88 올림픽) 잃었으니, 이번 2002 월드컵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된다고 각오가 짙게 배어 있다.
“월드컵을 전후로 외국인이 많이 올 것이고, 자연히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생기지 않겠어요. 우리도 외국 여행을 떠날 때 그 나라의 언어에 절로 관심을 두 듯이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도 최소한 한국어 한 두 마디라도 배우고 싶은 욕구를 일으켜 주는 것이 중요해요.”
허 이사장은 600여만 명에 이르는 재외동포 후손을 (한국어) 벙어리로 방치하지 않으려면 우리 말과 글의 세계화 노력이 절실하고, 이를 위해서는 전문성을 갖춘 교사 양성ㆍ연수제도 마련과 체계적ㆍ표준적 교재 개발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막연히 한국 말과 글을 안다고 한국어를 가르치면 효율이 낮아요. 교수법도 알고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도 두루 알아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지요.
한글학회가 6년 전부터 외국의 한국어 교사를 연간 50여명씩 국내로 초청해 연수기회를 제공하고 있는데, 모두 한국어 교육에 정열과 사명감을 갖고 있어요.
얼마나 대견합니까. 우리가 그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너무 안타까워요. 그들을 더 이상 방치하다가는 600여만명의 재외동포를 (한국어) 벙어리로….”
허 이사장은 “한국어의 세계화는 어느 한 단체나 조직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부ㆍ기업의 적극적인 지원은 물론 온 국민의 관심과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소리높였다.
“언어는 문화와 교육의 기반이야. 뿌리없이 어떻게 꽃을 피울 수 있겠어. 영어도 좋고 일어도 좋고 중국어도 좋지만, 당장 눈 앞의 이익이 없다고 해서 우리 말과 글을 지금처럼 냉대해서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어.
무엇보다 ‘한국어 교재와 배울 곳이 없어 한국어를 배우지 못한다’는 외국인은 없도록 해야합니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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