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의 구원자인가, 오히려 그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광인(狂人)인가.’ 3월 탈북자 25명의 베이징(北京) 주재 스페인 대사관 진입을 도운 독일인 의사 노르베르트 폴러첸(44) 박사가 미국 언론의 도마에 올랐다.워싱턴 포스트는 5일 ‘북한 주민 도우려고 규칙을 어기는 독일 의사’라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에서 북한 인권 운동가라는 명성과 함께 폴러첸 박사의 ‘위험한 기행’을 크게 다루었다.
“10년 동안 독일 의료 체계의 개선을 요구하다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이 시골 의사는 TV 카메라를 불러 놓고 총알 없는 총을 스스로에게 쐈다.
그리고 층계참으로 떨어진 뒤 병원으로 실려갔다.”이 신문은 그가 4년 전 이 자살극에서 보여준 완벽한 홍보 효과를 이제는 북한 주민이 처한 절망을 극대화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폴러첸 박사는 잇단 기행으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휴전선에서는 월경을 기도하고 TV 취재진을 북한ㆍ중국 국경으로 데려가 북한에 밀입국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2000년 10월에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부장관과 함께 평양을 방문한 서방 취재진을 북한 당국의 허락 없이 열악한 병원으로 데려갔었다. 북한에서 18개월 동안 의료활동을 하며 훈장까지 받았던 그는 2개월 후 추방 조치를 당함으로써 북한과의 밀월 관계를 청산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이 같은 ‘튀는 행동’ 때문에 북한 주민들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평양 주재 농업기구 전문가인 토마스 매커시는 그의 행동에 대해 “북한의 곤경을 국제문제화하려는 잘못된 시도로서 명백한 패자는 북한 주민일 것”이라고 말했다.
‘괴짜 의사’로도 불리는 폴러첸 박사는 하지만 “침묵은 독재를 보호한다”는 논리로 자신을 방어한다. 그는 “나치 시절 포로수용소 학살에 관한 많은 소문이 있었지만 독일인들은 두려움 때문에 침묵했다”며 “나는 두 번 다시 실수를 범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동독인의 망명을 허용하면 동독인들에게 더 많은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보도했던 서독 언론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독재 체제를 공론화되면 결국 무너진다는 그의 지론은 다소의 부작용을 감수하고라도 앞장서 떠들어야 한다는 행동주의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로 나타나는 부작용은 그가 우려했던 것 이상이다. 주중 스페인 대사관 농성 사건 이후 중국 당국의 대대적인 단속이 이어짐으로써 많은 탈북자들이 강제 북송(北送) 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예이다.
그는 요즘 18개월 간의 북한 체류기간 중 촬영한 북한 주민 사진을 들고 세계 곳곳을 돌며 북한의 참상을 고발하고 있다. 3일엔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의 아ㆍ태 소위에 나와 북한 주민들의 “믿기 어려운” 생활고를 증언했다.
김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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