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에서는 권력이 개인이나 집단에 집중되기 어렵다. 통치기관을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로 나누어 각각 독자적인 권한을 부여한 삼권분립제도가 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권력이 한 곳에 집중되면 전제정치를 가져온다는 프랑스 몽테스키외의 생각은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 미국의 연방헌법에 그대로 수용됐다. 대통령제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정부라고 하면 거의 전적으로 대통령과 행정기관들을 떠올린다.
한국인들보다 더 오랫동안 대통령제를 경험해 온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정부는 행정 입법 사법부를 통틀어 가리킨다. 미국인들은 의회와 법원도 행정부와 함께 독자적인 권한을 바탕으로 통치에 관여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미국 정치의 권력분산 경향은 도처에서 뚜렷하다. 입법 과정에서 상원과 양원의 권한이 대등한 양원제가 운영된다. 상원이나 하원 내부를 보아도 권력분산이 농후하게 나타난다.
1990년대 후반 하원의장을 지낸 공화당의 뉴트 깅그리치는 1910년대 이래 가장 막강한 지도자였는데도 그의 독주는 상임위원장들의 불만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은 연방과 주(州)의 관계에 있어서도 주정부의 권한이 강한 연방제 국가이다. 2000년 대선에서 플로리다주 선거 결과에 대한 공방에서 나타났듯이 연방선거라고 하여도 주정부가 관리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다수횡포·전제정치 막아야
미국 연방헌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매디슨은 인간이 결코 선한 천사가 아니고 야망을 갖고 있으므로 권력분립제도로써 다수의 횡포와 전제정치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디슨은 입법 행정 사법기관이 서로 연관 없이 절대적으로 분립할 것을 말한 것은 아니었다.
이 기관들이 기능에 따라 분립하더라도 부분적으로는 권한을 공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권력이 권력으로써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룰 때에 전제정치가 발붙이지 못한다고 말했다.
삼권분립에는 견제와 균형이 뒤따른다. 이를테면, 연방헌법 제1조 제1절이 의회에 입법권을 부여하고 있지만 대통령이 입법과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배제되지 않는다. 대통령은 입법조처를 의회에 권고하고 행정부에서 작성된 법안을 의원이 발의하도록 하는 경우가 흔하다.
대통령은 의회가 통과시킨 법률에 대한 거부권을 갖고 있다. 한편 의회도 대통령의 정책집행에 관여할 수 있다. 행정기관의 조직 권한 예산이 의회의 의결에 좌우된다. 의회는 조약비준동의권, 선전포고권을 통해 대통령의 대외정책 수행을 제약하기도 한다.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한 대통령이 제왕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반대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자 의회가 독재를 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권력분립은 의회와 행정부 어느 한 쪽이 장기적으로 우위에 설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 제도는 자유의 수호와 고위 공직자의 권력남용 방지에 공헌한다.
▼정책지연에 국정 마비까지
그런데 권력분립은 국가기관의 대립과 갈등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지나치게 분산된 권한으로 말미암아 정책결정이 지연되면 문제상황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 정책결정의 내용이 일관성을 잃게 될 우려도 있다.
정책집행의 결과에 대한 책임의 귀속이 불분명해질 수가 있다. 최악의 경우 정치적 교착으로 국정을 마비시킨다. 정책을 둘러싸고 대통령과 의회가 극한적으로 대립하더라도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하거나 대통령과 내각을 불신임하여 사퇴시킬 수 없다.
90년대 들어 제임스 샌퀴스트 같은 학자가 미국의 권력분립 제도가 국가기관을 상호 투쟁하도록 유인하며 효과적이고 책임있는 통치를 어렵게 만든다고 비판하면서 개헌론을 제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통령의 정당이 양원 모두에서 아니면 어느 한 쪽에서 소수당이 되는 여소야대 또는 분할정부 상황에서는 권력분립의 취약성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진다. 미국에서는 20세기 들어 1952년까지 26회의 연방선거 중 4차례만이 여소야대를 가져왔으나 그 이후 2000년에 이르기까지 24회 중 16차례 여소야대가 나타났다.
대통령제에서 여소야대는 이례적이지 않다. 미국 유권자들은 최근에 올수록 여대야소 또는 통합정부보다는 여소야대를 더욱 선호한다. 의회의 입법산출량 자체는 여소야대나 여대야소의 차이가 별로 없다. 다른 대통령제 국가들과 비교하여 미국에서는 여소야대에서도 국정이 대체로 원만하게 수행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추진하는 입법의 의회통과 가능성은 여대야소에 비해 여소야대에서 상대적으로 낮다. 입법을 비롯한 정책의 실질적 내용을 보면 대통령의 지도력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나 일반적으로 여소야대에서 국정수행의 일관성이나 효과성 확보가 보다 더욱 어렵다.
2002년 중간선거에서는 사우스 다코다주의 상원선거가 주목을 받고 있다. 민주당의 톰 대슐 상원원내총무가 지원하는 현직 민주당 상원의원에 맞서 현직 공화당 하원의원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설득을 받아들여 출마했다.
부시 대통령은 중간선거를 위한 모금에 안간힘을 쓰고 있으며 사우스 다코다 상원선거에는 지원유세를 나설 예정이다.
현재 상원에서는 공화당을 탈당한 1명의 무소속을 제외하고 50대 49로 민주당이 다수당 지위에 있기 때문에 부시는 중간선거에서 이를 역전시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대통령은 여대야소 상황이 되어야 자신의 정책의제를 수월하게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지도자 균형 갖춰야 성공
미국의 권력분립은 최근 그 한계와 위험을 노출시키기도 했다. 대통령이 반대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쌍방이 모두 양보할 의사를 갖고 있지 않다면 미국 정치에서도 심각한 교착상태와 국정마비가 초래된다.
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양원을 장악하게 되면서 클린턴 대통령과 깅그리치 하원의장 사이에 치열한 권력대결이 전개됐다. 그 결과 95년 말과 96년 초에는 연방정부 폐쇄까지 몰고 온 예산 파국이 발생했다. 95년 10월 1일 이전에 확정되어야 할 정부예산이 무려 7개월 가까이 지연되는 사태를 겪었던 것이다.
전천후 만능의 정치제도는 없다. 그 장점을 극대화하는 한편 단점을 최소화하는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미국의 권력분립제도는 자의적인 권력행사를 억제하여 민주정치 구현에 크게 기여했다. 반면에 이 제도는 국정수행의 지연과 마비를 초래할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대통령의 지도력, 그리고 기관 간의 상호 신뢰와 타협이라는 조건에 힘입어 국정수행이 비교적 원만하게 이루어져 왔다. 권력분립제도는 정치지도자들이 미묘하고 유동적인 권력 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량을 갖고 있을 경우에만 성공할 수 있다.
박찬욱(朴贊郁)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아메리카 핸드북 / 양당제와 분할정부 전통
미국의 양당제는 건국 초기부터 계속되고 있지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정계개편과 지지층의 이합집산이 거듭돼 왔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을 지지하고 중앙집권형 정치를 지향하던 연방주의 당파(Federalists)의 흐름을 이어받고 있다.
이 당은 19세기 초 소멸했으나 7대 앤드류 잭슨 대통령 치하에서 민주당이 분열하자 반 잭슨파가 국민공화(휘그)당을 결성했다. 현재 공화당은 동부 산업자본세력과 중서부 자영농의 연합세력으로 1854년 결성됐다.
1930년대 민주당의 뉴딜 연합 이후 소수세력화했으나 80년대 기독교 우파, 남부 보수층과 연합하면서 세력을 재확장해 94년 중간선거를 계기로 다수당으로 다시 발돋움했다.
민주당의 역사는 연방헌법 제정을 반대하던 공화주의 당파(Republicans)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공화당으로 불리던 제3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당시부터 정권을 독식하다 노예제 때문에 분열, 남북전쟁 이후 뉴딜연합 때까지 장기간 소수세력이었다.
50년대 이후에는 야당이 의회 다수당을 점하는 분할정부(Divided Government)가 일반화하고 있다. 대통령 소속당이 다수당을 점하면 통합정부(United Government)라고 부른다. 70년대 이후 카터 대통령 재임 4년과 클린턴 대통령 1기의 2년 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분할정부 상태가 계속됐다.
사실상 여소야대의 상시화다. 이 같은 현상은 연방정부를 불신하는 분할투표 행태, 또는 미국민의 관심이 30년 주기로 사회적 목적에서 개인적 이익으로 번갈아 바뀌는 정치사이클 등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지적돼 왔다. 반면 클린턴 2기 당시 분할정부는 의회지도자들에 대한 불신 때문에 초래됐다.
분할정부는 대통령과 의회의 타협을 이루고 중도노선의 정책을 촉진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는 것으로 해석돼 왔으나 90년대 중반부터 사법적 소추와 스캔들 폭로 등 극한 대립 양상이 종종 나타나고 있다.
유승우기자
swy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