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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널리스트가 건강해야 증시도 '튼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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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널리스트가 건강해야 증시도 '튼튼'

입력
2002.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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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 월가는 애널리스트(기업분석가)들의 종목분석 및 투자의견에 대한 객관성 시비로 떠들썩하다. 세계적 증권사인 메릴린치의 투자등급 과대 포장 등 불공정한 관행이 뉴욕 검찰에 의해 드러났고 검찰은 이를 계기로 월가의 주요 증권사로 조사 대상을 확대했기 때문이다.이 같은 상황을 비단 먼 나라 얘기로만 치부해 버리기엔 국내 상황도 고쳐져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정확하고 신속한 분석으로 기업과 투자자들 사이에 건강한 매개체 역할을 해야 하는 애널리스트 업계에는 아직도 이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널려 있고 이 때문에 시장의 공정성도 훼손되는 것이다. 증권업계 종사자들은 “향후 증권시장이 발달하면 할수록 애널리스트의 역할과 그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은 자명하다”며 “증시가 건강하려면 애널리스트의 공정성과 도덕성 제고 방안이 선결과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부 잘못된 관행

지난달 말 지방에서 있은 한 기업의 IR(기업설명회)에 참석한 70여명의 애널리스트들은 기업측에서 제공한 왕복 비행기편으로 IR장에 다녀왔다. 1박2일의 일정 동안 숙식비도 기업측이 제공했다. 이곳을 다녀온 한 애널리스트는 “원칙적으로는 교통비, 숙박비 등 비용을 참석자들이 부담 하는 것이 맞다”며 “이 같은 편의를 제공받으면 심적인 부담으로 해당 기업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진다”고 털어놨다.

모 코스닥등록기업은 지난해 기업설명회에 참석한 애널리스트들에게 참석자들의 이름까지 새긴 80만원대의 만년필을 선물했다. 얼떨결에 이를 받아온 한 애널리스트는 “거절할 분위기가 못 돼 받아 왔지만 내내 부담이 돼 팀장에게 보고하고 돌려줬다”며 “아무래도 그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분석은 못할 것 같아 취한 조치”라고 말했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돈봉투가 오고 가는 경우도 있다. 실제 모 제약업체에서 100만원짜리 봉투를 건네 받은 경험이 있는 한 팀장급 애널리스트는 “심리적으로 공범이 된 느낌이어서 견디기 힘들었다”며 “결국 해당 기업에게 발목이 잡혀버리게 된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과도한 편의제공, 선물과 금전 공세 등은 애널리스트들의 도덕성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신뢰 확보를 위해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기업들이 주가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면서 이 같은 잘못된 관행이 더욱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제일투자증권 김정래 기업분석팀장은 “기업탐방에 필요한 출장 경비 등은 소속 증권사에서 지급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 관행을 깨야 한다”며 “애널리스트들의 도덕성을 자율규제하는 방안 마련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매도추천 없는 리포트

매일 매일 쏟아지는 증권가 리포트엔 보유 종목을 ‘매도(SELL)’하라는 추천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증권가에선 전체 리포트 중 1%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설명이다. 원인은 간단하다. 매도추천을 내면 해당 기업, 주주, 증권사 어디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기 때문.

매도 추천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애널리스트 보고서의 신뢰성을 의심케 한다. 브릿지증권 김경신 상무는 “수많은 리포트 중에서 매도 추천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게 정상”이라며 “매도 추천시 기업과 주주의 협박에 가까운 항의에다 말썽이 생길 경우 좌천성 인사까지 있는 풍토가 매도 추천을 못내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건강한 증시를 위해선 애널리스트들이 주관을 갖고 매도 추천도 해야 한다는게 모두의 공감. LG투자증권 이왕상 애널리스트는 “기업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정보 하나라도 더 얻는 풍토도 매도 추천을 못 내는 이유”라며 “기업설명회의 완전개방화, 정기화 등을 통해 매도추천으로 인한 불이익을 차단하고 애널리스트들은 정확한 근거에 바탕한 매도 추천도 해야 신뢰성이 제고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독립성 확보 어려운 애널리스트 위상

애널리스트 업계의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애널리스트들의 독립성 확보다. 기업에 휘둘리고 소속 증권사의 눈치를 봐야하는 열악한 위상이 공정성 확보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증권사가 직ㆍ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기업에 대해선 부정적 리포트를 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한 애널리스트의 고백.

증권사내 IB(투자은행)사업부가 한 기업의 주간사로 유상증자나 공모 등을 추진할 경우 그 기업에 대해선 부정적 의견을 못낼 뿐 더러 과대포장한 보고서를 쓰는 경우도 있다. 펀드매니저들을 대상으로 법인영업을 하는 브로커(영업직원)들의 요청으로 과대 분석을 하는 것도 다반사다.

결국 이는 애널리스트가 소속 증권사에 목매어 거짓 정보를 제공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경력 5년의 한 애널리스트는 “법인영업부나 IB사업부 등 증권사 영업에 이익을 주는 리포트를 본의 아니게 쓰거나 미리 정보를 알려주는 경우가 없지 않다”며 “인사권과 연봉을 무기로 애널리스트를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고 털어놨다.

투자등급을 하향 조정하면 곧바로 담당 애널리스트에게 항의하고 기업설명회 조차 오지 못하게 하는 기업들의 잘못된 의식도 문제. 이 때문에 애널리스트들은 기업들에게 잘 보여야 하고 소신있는 분석을 가로막게 된다. 증권업협회 자율규제부 관계자는 “IB사업 관련 리서치팀을 분리한다든가 리서치부서와 회사상품부서간의 정보차단장치를 엄격히 마련하는 등의 애널리스트 독립성 확보 방안이 가장 중요하다”며 “필요하면 강제 규정장치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어떤가

애널리스트의 도덕성 시비가 한창인 미국은 이미 지난해 6월 미 증권업협회(SIA)가 ‘애널리스트 윤리강령’을 만들어 시행중이다. 이를 통해 많은 부분이 정화되고 있는 실정. 이 윤리강령엔 ▦리서치조직을 기업공개 등 영업과 독립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애널리스트는 자신이나 친인척이 간여하고 있는 회사는 담당하지 않는다 ▦회사 관리자는 애널리스트가 매수추천에만 치우치는 것을 방지하고 매도추천도 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는 등 다양한 증시 건전화 방안이 들어있다. 이 같은 윤리강령 하나 없는 국내와는 많이 다른 상황이다.

이와 함께 올 2월엔 전미증권업협회(NASD)가 애널리스트 종목추천과 관련된 5개 감독방안을 신설 발표했다. 이 감독 규정 역시 ▦특정회사 리서치 자료 작성시 해당회사로부터 받은 보상내역 공시 ▦IPO(기업공개) 업무시 일정기간 리서치 자료 공표 금지 ▦증권회사, 애널리스트의 주식보유현황 공시 등을 담고 있다. 금융감독원 증권감독국 신호철 부조사역은 “이조항을 어길 경우엔 강력한 제재 조치가 취해지고 있어 애널리스트 독립성과 도덕성 확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발전 방안

건강한 증시의 선결 과제인 애널리스트의 도덕성과 독립성 확보를 위해선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수다. 애널리스트 개인들의 각성만을 요구하기엔 시스템적인 문제가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와 관련한 국내 규정은 ‘조사분석 자료 공표시 확정된 때로부터 공표후 24시간 경과하기 전까지 대상 주식을 자기계산으로 매매해서는 안된다(2001년 5월3일 시행)’ ‘애널리스트와 투자전략가, 결제라인의 임원, 리서치센터장 등은 특정 종목 추천시 자신 또는 배우자의 주식보유 현황을 공표해야 한다(5월1일 시행)’는 금감위 증권업감독규정내 2개 조항이 전부. 미국과 같은 세부적인 통제기준은 전무하다. 더구나 윤리강령 등 업계 자율규제를 가능케 하는 장치도 없다.

금감원 신 부조사역은 “투자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애널리스트 업계의 신뢰 저하 요인 제거를 위한 다양한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며 “이 같은 맥락에서 지난 1일 새로운 규정을 공표 시행하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재산적 이해관계나 편익 등의 허용 범위, 주식보유 관련 기준 등 증권업협회 등과 협의해 보다 구체적이고 세밀한 내부통제 기준 등을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녹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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