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서울보다 북서쪽에 있는 집에서 북한산 자락을 남쪽으로 바라보며 북동쪽에 있는 직장, 광릉의 숲까지 매일 출근을 합니다.시간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이 세상에 소풍을 나왔다가 간다는 시인의 마음을 흉내내며, 정말 소풍 가는 기분으로 그 조금은 먼 길을 다닙니다.
오월이 되고 나니 유난히 햇살이 눈부십니다. 엊그제만 해도 여리게 느껴지던 잎새들은 며칠 전 단비에 힘을 얻었는지 지금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생명력이 충만합니다.
투명하게 푸른 하늘을 배경삼고, 햇살을 받아, 한 장 한 장 반짝반짝, 팔랑팔랑 거리는 잎새들을 보노라니 절로 감탄이 일더라구요. ‘이래서 오월이 아름다운 계절이구나!’ 이제 신록은 점점 더 짙어지고, 점점 더 강하게 푸르러지겠지요.
오늘은 이 소풍 길에서 차창으로 부딪혀 날아오는 하얀 솜털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이 순간 꽃가루 이야기를 하는 것이구나 생각하는 분들이 계셨다면 그것은 잘못 알고 계신 것입니다.
요즈음 하얀 솜뭉치처럼 거리를 휩쓸고 다니는 것은 꽃가루가 아닌 씨앗이 붙어 있는 솜털입니다.
이미 부지런한 나무들이 꽃을 피워 만들어낸 꽃가루들이 날아다니다가 인연을 가진 암술을 만나 꽃가루받이를 끝냈고, 씨앗을 맺어 보다 멀리 너른 세상으로 자신의 종족을 퍼트리려고 여행을 떠난 씨앗들입니다. 바람을 타고 작은 씨앗을 보다 멀리 보내려고 머리를 써서 솜털을 붙여 놓은 것이구요.
그러니 이 솜털을 달고있는 씨앗들은 우리가 걱정하는 꽃가루 알레르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존재랍니다. 그런데 봄이면 꽃가루 알레르기 문제와 함께 미움을 받고 있으니 억울해도 한참 억울할 것입니다.
주로 곤충에 의해 꽃가루가 옮겨지는 충매화로써, 일찍 꽃을 피운 능수버들 수양버들 같은 버드나무 종류, 은사시나무 이태리포플러 같은 사시나무 종류에서 많이 생깁니다. 이 솜털들이 도시의 거리를 몰려다녀 좋을 것은 없습니다.
더러운 도시의 먼지까지 함께 묻혀 다니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 환경을 더럽힌 사람 탓입니다.
오늘 제가 소풍길에서 만난 솜털은 부드럽고 사랑스럽고 자유스러워 보였으니까요. 물론 미움을 받으며 도시를 떠돌다 씨앗을 묻을 흙조차 만나지 못하고 그래서 싹조차 틔우지 못하고 그 일생을 다할 씨앗에게도 불행입니다.
/이유미ㆍ국립수목원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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