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감시공포증…"누군가 날 훔쳐보는 것 같아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감시공포증…"누군가 날 훔쳐보는 것 같아요"

입력
2002.05.06 00:00
0 0

#1.회사원 A(29)씨는 낯선 남자가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 괴전화를 걸어온 이후 어딜 가든 주위를 꼼꼼히 살핀다. ‘도청’ ‘몰카’ 가 의심되는 수상쩍은 틈새가 있으면 모조리 막아버린다.#2.얼마 전 조기퇴직을 당한 회사원 B(45)씨. 그는 ‘전화를 도청당했기 때문에 퇴직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휴대폰 통화 중 상사를 욕하는 내용이 새나갔다는 것이다. 이후 그는 ‘누군가 엿듣고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울리다 만 전화라도 발신자를 추적하고, 집안 식구에게 온 전화까지 모조리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다짜고짜 위 아래층에 사는 사람을 찾아가 ‘왜 엿듣냐’ 며 시비를 걸어 싸운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3.‘모두들 날 무시한다’며 병원을 찾은 주부 C(50)씨는 집안 곳곳에 몰래 카메라가 설치돼 자신의 사생활을 남들이 다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편이 자신을 무시하며 윽박지르는 것도 이웃에서 다 안다고 생각하고, 반상회 등 일체의 모임에 가지 않고 집안에 틀어박혀 지낸다.

주요 인사들과의 대화를 낱낱이 녹음했다는 로비스트 최규선씨의 ‘테이프’ 존재여부가 화제다.

최씨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도, 최근 보통 사람들이 각종 이권이 얽힌 각종 계약이나 협상, 혹은 일상사에서 상대방 몰래 대화내용을 녹음하거나, 몰래 카메라에 담는 일이 흔해졌다.

이러한 행동에는 사회적인 요소가 크다. 부정이나 취소 등 말을 뒤집는 행위가 횡행해 전사회적으로 불신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녹음에 집착하는 상당수는 ‘말바꾸기’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다. 상대방을 근거 없이 의심하고, 그 의심에 집착하는 편집증적 성격이 원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노이로제도 감시공포증의 한 형태

‘누군가 날 감시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물론 다 정신질환은 아니다. 권준수 교수는 “근거가 어느 정도 있는 경우, 한번이라도 피해를 당한 이후에 드는 감시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은 노이로제”라고 말한다.

자신의 행동이 과장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스스로 가라앉히려 노력하면서도 불안해 하고 거듭 확인하는 증세를 보인다면 노이로제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작은 일에 전전 긍긍하고, 매사 완벽을 추구하는 강박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노이로제가 생긴다. 두통이나 소화불량, 가슴이 뛰는 등 신체적인 증상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말한다.

최근 환자가 증가한 것은 특별히 강박적 성격이 늘어났다기보다는 정보화사회에서 사생활 침해라는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아진 탓이다.

■지나친 불안감 망상장애로 발전

그러나 ‘누군가 날 엿듣고(엿보고) 있다’는 불안감과 공포감은 극한 경우, 정신질환의 일종인 망상장애로 발전할 수도 있다. 앞에 열거한 B씨와 C씨의 경우는 망상장애의 전형적인 증세.

서울대 신경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망상 환자들은 어디를 봐도 감시나 도청을 당한다는 증거는 없지만 당사자들은 굳은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오는 전화마다 일일이 발신자와 내용을 확인하고, 통화 중 끊어지거나 조금만 혼선이 생겨도 불안감이 더욱 증폭된다.

감시당한다는 생각이 들면 매 순간이 괴롭다. 안절부절 못하고 늘 화를 낸다. 망상장애환자 중 상당수는 막무가내로 주변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어 싸움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들 스스로는 ‘병’이라는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개인정보 침해 사례들은 이들의 확신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근거가 된다.

주위에서 ‘그럴 리 없다’고 반박하면 ‘봐라, 이렇게 도청을 당하지 않느냐’고 증거를 들이댄다.

의심이 많으면서, 호기심이 많고 집요한, 편집증적 요소를 지닌 사람에게 이러한 망상장애가 잘 나타날 수 있다.

중년 이후 우울증 환자에게 이러한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좌절이나 배신 등 정신적 스트레스도 망상장애를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김창윤 과장은 “현재 서구에서는 전 인구의 1%정도가 망상장애를 갖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치료는 어떻게?

감시공포증의 치료법은 증상에 따라 달라진다.

노이로제의 경우 약물치료보다는 정신 이완이 더 효과적이다. 평소 생활에 긴장도가 높다면 명상이나 단전호흡, 취미활동 등으로 정신을 이완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아프다’는 생각이 더욱 불안을 확대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이로제는 전문가들은 “신경을 덜 쓰는 것만으로도 증상이 호전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단 약물로 육체적인 증상(소화불량, 두통 등)을 완화시킨다.

망상장애의 경우 약물치료가 최우선이다.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등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해 증상을 개선한다.

이전에는 이러한 약물은 침을 흘리거나 몸이 뻣뻣해지는 등의 부작용이 많았지만 최근 개발된 약들은 이러한 부작용을 많이 완화시켰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