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후보가 민주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세력을 함께 아우르는 신민주연합의 정계개편을 추진하자 생각나는 정치단체가 하나 있다. 바로 민주화 추진협의회(민추협)다. 노 후보가 염두에 두고 있는 민주화 세력의 골간 중 하나가 민추협이기 때문이다.▦민추협은 1984년 전두환 정권 시절에 DJ의 동교동계와 YS의 상도동계가 힘을 합쳐 결성했다. 광주민주화 운동과 YS의 단식투쟁이 모태(母胎)가 됐고, 당시 DJ는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다. 출범 날짜를 5월18일로 잡은 것도 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을 기리자는 취지에서였다. 민추협은 신당을 창당, 85년 2ㆍ12 총선에서 선풍을 일으키며 규격정치의 틀을 깼다. 미국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DJ가 최초로 맡은 자리도 민추협 공동의장이었다. 또 한명의 공동의장은 물론 YS였다. 민추협은 두 김씨의 주도아래 이민우 총재가 이끄는 신민당을 원격 조정했다. 언론은 이를 ‘장외정치’의 전성시대로 기록한다.
▦민추협은 신민당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투쟁을 독려했고, 87년 6월 항쟁의 중심에 섰다. 이 때만 해도 두 김씨는 동지이자 협력자 였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두 사람의 협력관계는 민주화 완성 이후 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고, 인사와 조직운영에서 정확히 같은 지분을 행사했다. YS는 필요하면 DJ에게 대통령 후보를 양보할 수 있다고 말했고, DJ는 직선제 개헌만 된다면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불출마 선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6ㆍ29 선언 후 야당의 집권가능성이 열리자, 두 사람 사이는 벌어졌고 후보 단일화가 실패하자 완전 결별한다.
▦두 김씨의 결별과는 별도로, 민추협 사람들은 민주화 투쟁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매년 창립 기념식을 갖고 옛날을 회고하는가 하면, 지난 2월에는 김상현 전 의원 주도로 민추협을 사단법인으로 출범시켰다. 민추협 사람들의 최대 희망은 두 김씨의 관계복원을 통해 민주화 세력을 재단결하는 것이다. 민추협 사람들이 하지 못한 일을 노무현 후보가 해낼지 지켜 볼 일이다.
이병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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