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운동이라면 종목을 떠나 웬만큼 흉내는 낼 줄 알았던 내가 해보지 못한 유일한 운동이 바로 축구다. 남자들만 하는 경기라는 선입견도 강했고, 그 넓은 운동장을 쉴 새 없이 뛰어다니려면 얼마나 힘들까 싶어 지레 겁을 먹고 시도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그러다 축구에 적은 흥미나마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아마도 중학교 2-3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멕시코에서 열렸던 국제경기에서 우리나라 청소년 축구팀이 4강에 올랐던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들은 자율학습시간에 라디오를 켜 놓고 축구중계를 듣는 호사를 누렸다.
60여 명의 학생들이 라디오에 귀를 쫑긋 세운 채 “한국 이겨라, 한국 이겨라”를 외쳤다. 아마도 그때 처음으로 축구경기도 여럿이 함께 응원을 하면서 보면 재미있는 스포츠구나, 느꼈던 것 같다. 똘똘 뭉쳐 같은 결과를 기원하는 일체감이 주는 짜릿함이 분명 있었다.
어른이 돼서는 축구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했다. 푸른 잔디 위를 뛰어다니는 선수들의 젊고, 단단하고, 그리고 역동적인 몸과 몸놀림을 볼 수 있다는 게 큰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내게 있어 축구를 보는 재미는 그 정도다.
그래서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16강 진출이 마치 국가적 과제나 되는 것처럼 얘기되는 우리사회의 분위기가 사실 좀 불편하다. 붉은악마의 응원과 함성으로 축구경기의 재미가 더해진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마치 전쟁터에라도 나가는 병사처럼 결연한 표정으로 한국의 승리를 강조하는 붉은악마들을 볼 때도 좀 뜨악해진다.
월드컵 유치를 위해 몇 개의 도시에서 황급하게 만들어진 축구경기장과 그 주변에 졸속으로 조성된 공원을 볼 때는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그런 것들이 바로 우리사회는 그리고 축구팬들은 월드컵을 즐거운 축제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솔직히 난 우리나라 팀이 16강에 들든 안 들든 관심이 없다. 방송에 나올 때마다 프로그램 내용과는 전혀 관계없이 월드컵과 16강 진출만을 외쳐 대는 모 연예인을 비롯해 축구 열성팬들이 들으면 분노할 테지만 말이다.
그들이 날 비난한다면 그 이유는 짐작컨대 축구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애국심이 없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월드컵을 지구촌 축제라고 말한다. 그런데 화려한 쇼가 펼쳐지는 개막식이 있고, 줄줄이 문화행사가 열린다고 축제가 되는 게 아니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경기 그 자체를 즐길 때, 승리를 위한 응원이 아니라 응원 그 자체에서 신명을 느낄 때 월드컵은 진정한 의미의 축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광고 속에 등장하는 한석규가 하는 것처럼 딱 그 정도의 표정과 몸놀림으로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박수 치면서 경쾌하게 월드컵 축구를 즐기면 안 될까.
/황오금희 '이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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