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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하느님밖에 못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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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하느님밖에 못말려"

입력
2002.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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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대 정치를 말할 때 '3김'을 빼놓을 수 없다.물론 영자 약칭으로 YS DJ JP로 불리는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씨를 말한다.

'3김 정치'의 탄생은 오랜 세월 폭압적 수단을 동원해 정권을 유지했던 '박정희 독재'의 종식과 더불어 시작된다.

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는 YS와 DJ, 그리고 소위 근대화 세력을 대표하는 JP는 1980년 '서울의 봄'을 맞아 각기 다른 정치의 길을 모색한다.

전두환 정권의 등장으로 세 사람은 모두 좌절감을 맛보았으나 7년 뒤 다시 한번 대권도전의 기회를 갖는다.

■ 박정희 정권에 뿌리를 둔 JP와는 달리 YS와 DJ는 같은 야당의 뿌리에서 나왔다.

하지만 지역적으로 한 사람은 경상도, 다른 한 사람은 전라도를 대표했고 이념적으로도 YS는 DJ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다.

성격은 물론, 정치 스타일까지도 다른 두 사람은 서로에게 경쟁자였으나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하고 1987년의 6월 항쟁 때까지 좋은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어렵게 쟁취한 그 해의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두 사람은 분열됐고 여기에 JP까지 나서는 바람에 정권교체는 실패했다.

■ 이 때부터 '3김 정치'의 종식을 바라는 국민적 여망은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판을 좌지우지했다.

1992년의 대선에서 3당 합당으로 생겨난 민자당의 간판으로 YS가 후보로 나서 JP와 손잡고 DJ와 싸워 이겼다.

5년 뒤, 1997년 대선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조합이 이루어졌다. DJ와 JP가 '반YS'의 기치 아래 공조를 이루어 YS의 뒤를 이은 여당 후보 이회창씨를 물리쳤다.

그런데 다시 5년이 흐른 지금, 마지막 남은 '3김'의 조합이 이루어지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YS와 DJ가 접근하는 듯한 분위기에 JP는 점점 이에서 멀어지고 있다.

■ '노풍'(盧風)이 불어오고 이회창 이인제씨의 대세론이 맥을 못 추는 것을 보았을 때 많은 사람은 드디어 '3김 정치'의 잔재가 사라지는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것은 환상이었다. '3김 정치'는 여전히 살아있고 '신3김 정치', '신지역주의'라는 조어가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아무리 정치가 '살아 움직이는 생물(生物)'이라지만 언제까지 명분도, 원칙도, 의리도 없이 오직 표를 향해서만 질주해야 하는 것인가 안타깝다.

언젠가 한 젊은 정치인으로부터 들었던, "3김 정치는 하느님밖에 못 말려"라는 냉소적인 말이 사실이 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신재민 논설위원

jm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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