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경 두번째 창작집 '꽃그늘 아래'글은 쓴 사람의 성품을 짐작하게 한다.
소설가 이혜경(42)씨의 두번째 창작집 ‘꽃그늘 아래’(창작과비평사 발행)에 실린 단편 10편을 읽다 보면, 이 작가는 틀림없이 심성이 곱고 차분하리라고 헤아리게 된다.
흔한 ‘착한 소설’이 아니다. 이씨는 문장 하나하나 공 들여 소설을 쓴다.
묻혀버리기 쉬운 감정을 들추어내 섬세하고 다사로운 시선을 비춘다.
“따뜻하지만 감상적이지 않고, 다감하면서 또한 치밀하며, 충만하되 결코 넘치는 법이 없다.”(평론가 진정석)
작품들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작가 자신의 외국 체험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이씨는 1998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해외자원봉사 프로젝트에 지원,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부 족자카르타의 가자마다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다.
그곳에서의 2년여 삶은 소설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표제작과 ‘일식’이 그렇다. 갑작스럽게 죽은 애인 영모를 그리워하면서 족자카르타로 온 서연은 그곳에서 영모의 후배 윤지를 만난다. 윤지는 영모를 짝사랑했었다고 서연에게 털어놓는다.
‘일식’의 주인공 영월은 유부남 애인과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쫓기듯 결혼하고 남편의 근무지인 인도네시아로 온다.
작가는 상처 받은 여성들을 이국땅으로 불러내 그 상처를 똑바로 바라보게 한다. 부드럽게 상처를 어루만지도록 한다.
가족이라는 단어는 필연적으로 끈적거리는 유대감을 동반한다.
‘고갯마루’에서 학습지 교사인 화자에게는 집안의 재산을 날리고 방황하면서 살아가는 큰오빠가 있다.
5년 만에 귀향해 다시 만난 그녀는 큰오빠에게 격렬한 분노 대신 연민을 느낀다.
“아무 것도 묻지 않는 동생들의 정중함은 큰오빠에겐 어쩌면 질타보다 더한 문책인지도 모른다. 잡초처럼 끈질기게 세상 한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동생들에겐, 늘 대박을 꿈꾸는 큰오빠가 이르려 하는 그곳이 왠지 거품으로만 보였다.”
‘대낮에’에서 남편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을지 모르는 폭력성의 피 때문에 불안해 한다.
‘봄날은 간다’에서도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종애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딸을 둔 지원은 폭력의 공포를 함께 나눈다.
이혜경씨 소설에서의 폭력은 우리 일상이 얼마나 가식적인 것인지를 문득 깨닫게 한다.
“어떤 이에게는 무심코 마시는 커피 한 잔 값에 지나지 않는 책 한 권, 그러나 자신을 위한 책 한 권을 마련하는 일에도 짧지 않은 주저와 망설임을 거치는 당신이 있음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런 당신이 하고많은 책 가운데 이 책을 집어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등줄기가 시리다.”
그 ‘당신’을 위해 작가 이혜경은 온 힘을 다해 소설을 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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