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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5ㆍ4 運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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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5ㆍ4 運動

입력
2002.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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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5월4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학생들의 주도로 대규모 반제국주의ㆍ반봉건주의 혁명운동이 일어났다. 5ㆍ4운동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중국 신민주주의 혁명의 막을 올림으로써 20세기 역사의 한 매듭이 되었다.제1차 세계대전의 회오리 속에 동아시아에 신경 쓸 겨를이 없던 유럽 열강이 중국 침략의 고삐를 늦추고 있던 틈을 타 일본은 1915년 독일 조차지 자오저우만(膠州灣)을 점령하고 산둥성(山東省)의 독일 이권을 제멋대로 접수한 뒤, 중국 정부에 제국주의적인 21개조를 요구하며 압박을 가했다.

대전이 끝나고 파리에서 평화회의를 연 전승국들은 형식적으로나마 동맹의 일원이었던 중국을 무시한 채 산둥성 독일 권익을 승계하겠다는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에 반대하는 베이징 대학생들의 시위는 6월까지 이어지며 톈진(天津)ㆍ상하이(上海)ㆍ난징(南京) 등 각처의 민중에게 파급되었다.

운동이 점화한 5월4일 학생 30여명을 체포한 베이징의 군벌 정부는 한달 뒤인 6월3일 대규모 탄압을 가해 학생 1,000여명을 더 체포했다.

그러나 정부의 강경책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돼 여러 도시에서 노동자들의 파업과 상점 폐쇄가 잇따랐고, 전국의 여러 정파와 단체들이 파리 평화회의의 결정을 반대하는 통일전선조직을 수립했다.

결국 군벌 정부도 평화회의의 조인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1898년에 설립된 베이징 대학은 이 운동을 계기로 중국 학생운동의 메카가 되었다.

5ㆍ4운동은 1911년 신해(辛亥)혁명의 공화주의와 1917년 이래 문학혁명의 과학ㆍ민주주의를 자양분으로 삼은 근대화 혁명이었다. 그것은 또 조선 3ㆍ1운동의 격려를 받은 반제국주의 운동이었고, 러시아혁명의 기운을 흡수한 중국 노동ㆍ농민운동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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