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홍 전 국정원 경제과장의 검찰 진술(한국일보 2일자 1면)은 충격적이다. 그는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과 함께 ‘진승현 게이트’ 연루 혐의로 구속기소 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진 게이트’는 국정원 간부들이 벤처 기업인의 청탁을 들어주고 그 대가로 금품을 받은 통상의 비리사건이 아니다.국정원이 비밀로 하는 ‘특수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먼저 기업인에게 접근해 ‘국가를 위한 일’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받아 ‘정체불명의 인사’에게 건넨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정치 스캔들이다.
국정원을 비롯해 여권 관계자들은 당초 ‘진 게이트’로 인해 김 전 차장 등이 구속될 때 “개인비리일 뿐 조직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강변했고, 지금도 그 입장에 변함이 없다. 즉, 일부 간부들이 개인적인 치부를 위해 비리를 저질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번 일은 엄익준 당시 국정원 2차장이 명령계통을 통해 아랫사람에게 ‘업무’로서 지시한 것이다. 그리고 엄 전 차장이 사망하자 이 일은 후임자인 김 전 차장에게 인계됐다.
물론 이 일에 관여한 당사자들이 개인적으로 착복한 금품도 있었겠지만, 일의 시작은 분명히 ‘국정원 업무’였다. 정 전 과장의 진술대로 국정원 조직원이 기업인에게서 돈을 ‘기부’ 받아 제3자에게 전달했다면 당연히 불법행위다.
이제 해결의 수순은 자명해 졌다. 우선 국정원이 스스로 불법적인 ‘특수사업’의 실체와 전모를 밝혀야 한다. 혹시 정 전 과장이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조직을 핑계댔을 수도 있지만, 더 이상 “엄 전 차장이 사망했으니 우리는 모른다”는 식의 변명은 통할 수 없게 됐다.
조직 내의 고위 간부들이 연루된 일을 국정원이 파악할 수 없다면 국정원은 더 이상 정보기관으로서 존립의 가치를 갖지 못한다.
그리고 국회의 몫도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국정원의 잘못을 감시하는 기구인데 수수방관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정원 청문회’라도 열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국민이 국회에 준 의무가 아닐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