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세상에 부모의 업(業)을 잇는 대물림이란 지난 세기의 유물처럼 여겨진다. 다른 시대를 살아 가는 부자가 하나의 목표를 꿈꾼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한국 최고의 축구스타 차범근(49) 전 대표팀 감독과 그의 아들 차두리(22ㆍ고려대). 한국축구 최초로 이들이 세운 월드컵 부자(父子) 출전의 대기록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새롭다.
지난해 두리가 대표에 발탁됐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온 몸에 전류가 통하는 것 같았다”는 차 전 감독은 요즘 본선을 한달 앞둔 아들이 대견스럽다 못해 부럽기까지 하다.
“제가 뛰던 시절엔 못 먹고 자라서 배도 많이 고팠죠. 두리는 지금 최고로 좋은 환경에서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으니 솔직히 부럽지요.”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 대한 아쉬운 기억도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경기를 앞두고 발목 힘줄이 안 좋아 붕대를 감고 뛰었어요.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았던 거죠. 유럽생활 8년이 지난 뒤 대표팀에 합류해 후배들과 발을 맞출 기회가 없었다는 게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당시 후배들을 편하게 대하려고 해도 경기 중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그는 요즘 히딩크 감독이 강조하는 선ㆍ후배의 벽 허물기를 16년 전에 뼈저리게 느꼈던 셈이다.
잠시 회상에 젖어 있던 그가 다시 아들이야기로 돌아오자 냉정해졌다. 지난달 20일 코스타리카전서 두리가 국가대표 데뷔 후 첫 골을 넣었을 때 독일에서 경기를 지켜본 차 전 감독은 아들에게 센터링의 부정확함과 측면 1대1 상황서의 결정력 부족을 지적했다.
두 살 때부터 공을 가지고 논 두리가 공에 대한 적응력과 감각은 자신보다 낫다고 여기지만 본선에서 뛰려면 아직 배워야 할 점이 너무 많다는 것이 차 전 감독의 솔직한 생각이다.
두리 역시 월드컵 엔트리 발탁의 기쁨보다 긴장이 앞선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10년 동안 308경기에 출장, 98골을 넣었던 아버지의 화려한 경력과는 아직 비교가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 엔트리 선발이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는 두리는 본선 베스트 11에 대한 기대보다 대표훈련을 통한 경험축적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중학교 2학년때 비디오를 보고 아버지의 플레이스타일을 다 외웠어요.
하지만 아직도 아버지만큼 뛰려면 한참 멀었죠.” 코스타리카전서 1골1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부쩍 자신감을 얻고 있지만 이 수준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채찍질을 하고 있다.
월드컵에 대한 아들의 욕심은 남다르다. 아버지가 못 다한 월드컵 본선 1골을 기록하고 싶은 것이 차두리의 원대한 꿈.
평소 다양한 골 세리머니를 연습하고 있다는 그는 “A매치 첫 골을 넣었을 때는 일부러 담담하려 애썼지만 월드컵에서 골이 들어간다면 상황이 달라질 겁니다”라며 생애 최고의 순간을 조심스레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꿈은 소박했다. “아들이 축구를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월드컵에도 출전한다니 저에게 더 이상의 기쁨이 있겠습니까.” MBC 해설위원으로 아들의 플레이를 중계해야 할 그에겐 오히려 아들의 골이 부담스러운 것은 아닐까.
이준택기자
nagne@hk.co.kr
■오은미씨가 본 남편과 아들
두리가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이 남편을 쏙 빼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듣지만 사실 두리의 경기를 많이 구경하지는 못했다.
얼굴 생김새와 체격은 비슷한데 경기하는 모습까지 비슷할까 싶어 경기를 보니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얼굴에서는 눈매와 입술 주위, 귀와 이마, 얼굴형이 비슷하다. 플레이할 때 넘치는 파워와 스피드도 닮았다.
두리의 뒷모습이라든지 뛰어다니는 방향, 슛한 뒤 어깨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걸어나오는 모습도 젊었을 때 남편을 연상시킨다. 가끔 던지는 “축구를 좋아서 할 뿐이다”는 말도 똑같다.
많이 먹는 것은 물론 좋아하는 여자스타일도 흡사하다. 축구밖에 모르기 때문에 자신을 잘 보살펴 줄 수 있는 여자를 선호한다. 두리도 장가를 빨리 가고 싶다고 하니 적극 지원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성격은 약간 다르다. 남편은 다소 내성적이지만 두리는 친구도 많고 외향적이다.
차범근 전 대표팀 감독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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