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침을 열며] 마음의 난치병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 마음의 난치병

입력
2002.05.03 00:00
0 0

우리는 몸의 병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고 열심히 치료하면서도 마음의 병에 대해서는 둔감하다.최근 일련의 엽기적인 사건들은 마음의 깊은 병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몇 백만원의 신용카드 빚을 핑계로 살인을 반복하기도 하고, 친구와의 의리를 핑계로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태연하게 칼을 휘둘렀다.

그들의 말이나 표정에서 죄의식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그들은 마음의 난치병에 걸린 것이다.

부모의 무관심이나 거부, 학교와 사회의 냉대 등은 ‘자존감’이라는 마음의 기본 체력을 극도로 허약하게 만든다.

또 폭력영화나 게임들은 폭력을 미화하고 일상적인 것으로 느끼게 함으로써 범죄와 살인에 대한 면역체계를 붕괴시킨다.

이런 상태에서 황금만능주의와 신용카드에 의한 소비 유혹이라는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치명적인 병에 걸리게 된다.

마음의 난치병은 제 목숨 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목숨을 노린다는 점에서 몸의 난치병보다 더 심각한 병이다.

그런데 몸의 병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으로 사회가 치료의 상당 부분을 보장해 주면서, 마음의 병에 대해서는 드러난 증상인 범죄행위에 대해 형사처벌하고 감옥에 가두는 것 외에 특별한 처방이 없다.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마음의 병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회의 그늘지고 소외된 곳일수록 마음의 병은 더 깊고 오랫동안 방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요즘 사회복지의 현장에서는 심리상담 혹은 심리치료의 욕구가 폭증하고 있다. 부모로부터 방치되거나 학교에 부적응한 청소년들이 생활교사와 함께 꾸민 청소년공동체가정에서는, 마음의 상처가 심각해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전문가들의 심리치료 지원이 절실하다고 한다.

생활교사들이 공동체를 깨뜨리는 이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 쉽게 탈진한다는 것이다. 실업과 빈곤으로 자활프로그램에 참가한 이들에게도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 이상으로 ‘자존감’을 회복하고 상황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인내심을 갖도록 돕는 심리적인 지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오랫동안 차별을 받고 존엄을 가진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해 깊은 상처를 가진 이들에게 물질적인 지원 못지않게 마음 깊이 전달되는 위로와 치료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정신과 혹은 심리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또한 마음상태가 회복되어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옆에서 오래 기다리며 도와주고 지지해 주는 ‘도우미’가 필요하다.

우리가 병에 걸렸을 때 의사와 약사의 치료를 받지만 동시에 음식조절과 적절한 요양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마음의 병에서도 사후에 치료하는 것보다 미리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고 또 경제적이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거부’가 가장 치명적인 상처가 된다.

생후 2년 미만의 영아들에게는 한 사람과의 지속적이고 절대적인 관계가 필요하다. 미래의 건강한 사회를 위해 2년간의 유급·육아휴직이 꼭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여러 자녀를 키울 때에는 의식적으로 고른 사랑을 주어야 한다. ‘차별’은 곧 ‘거부’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사람을 학력 지역 경제력에 따라 차별해 사람대접을 하지 않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폭력이다. 그 폭력은 마음을 멍들게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조건들을 떠나서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것은 우리가 비 폭력사회에서 살기 위해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기본 소양이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마음의 병은 대부분 치료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마음의 병을 극복한 사람은 평탄하게 산 사람에 비해 매우 강한 정신적인 에너지를 갖게 된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애써 한 사람의 마음의 병을 치유해 주는 것은 사회 부적응자 대신 훌륭한 인재를 얻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투자다.

박주현·사회평론가·변호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