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말 이후 ‘나홀로’ 강세를 구가하던 한국 증시가 다시 미국시장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1999년 정보기술(IT) 열풍때 세계 증시가 뉴욕 증시의 우산 아래에서 움직이던 ‘주가 동조화(커플링ㆍcoupling)’ 현상이 재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가 1,000 고지를 향한 서울 증시의 진격로에 복병처럼 나타난 한미 증시 동조화 추세의 원인과 향후 주가 흐름, 투자전략을 분석한다.▼주가 동조화 뚜렷
나스닥지수 1,700선 붕괴의 충격을 안고 개장된 지난 달 29일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은 국내 투자주체들이 숨고를 틈조차 주지않고 2,086억원 어치의 물량을 쏟아냈다. 이날 종합지수는 31.14포인트의 낙폭을 보이며 60일 지지선을 하향 이탈했다.
나스닥지수 낙폭(-43.30포인트)이 비교적 컸던 지난 달 10일에도 외국인은 무려 3,194억원을 순매도, 지수를 32.64포인트나 밀어냈다. 지수가 43.11포인트나 빠지며 하룻 새 시가총액 23조 4,000억원을 날린 지난 25일 새벽에도 나스닥지수는 13포인트가 빠졌고, 외국인은 1,600억 가까이 매도했다.
주가가 내릴 때만 함께 움직인 것은 아니다. 외국인이 추세적 매도공세를 접고 순매수, 그것도 2,650억원대 대규모 사자로 전환한 지난 달 17일 새벽은 나스닥지수가 무려 63.01포인트나 상승하며 1,800대에 진입한 날이었고, 당일 종합지수도 2년여 만에 930선 등정에 성공했다. 나스닥지수가 1,800 초입에서 머물다 1,700으로 내려서기 직전 사흘동안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무려 5,800억원대 순매수를 기록했다.
한편 지난 달 종합지수와 나스닥지수의 상관계수는 0.48을 기록했다. 양대지수의 상관계수는 2000년 0.79에서 지난 해 0.5로 낮아졌다가 올 1월2일~3월29일 기간동안 –0.5로 역전된 바 있다. 양대 지수의 동조화 정도를 나타내는 상관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동조화가 커지는 것을 의미하며, 플러스일 경우 정(正)의 상관도, 마이너스일 경우는 부(負)의 상관도를 나타낸다.
대신경제연구소 투자전략실 성진경 연구원은 “투신권의 주식형자금 유입이 정체되는 등 국내 기관의 손이 묶이면서 외국인의 증시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며 “이 같은 추세는 차별화를 위한 새로운 모멘텀이 나타나기 전까지 불가피하게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동조화 탈피의 전제조건
올들어 지난 달 초까지 나스닥 지수가 10% 가량 하락하는 동안 종합지수는 30% 이상 상승했다. 이 같은 차별화는 투신권 등 기관으로 주식자금이 풍부하게 유입되면서 비롯된 유동성에다 국내 경기의 가파른 회복속도에 힘입은 것이다. 대우증권 이영원 투자분석팀장은 “세계 경기가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에도 우리 경제는 내수시장이 활발히 움직이면서 유동성과 기업 실적이 선행적으로 개선됐다”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 증시가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증시와의 차별화에 성공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런 맥락에서 한ㆍ미 주가의 탈동조화가 가능하려면 국내 기관의 유동성 보강이나 국내 경기의 차별적인 회복세가 전제돼야 한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전망이 그다지 밝지 만은 않다. 주식형 자금 유입 규모나 속도가 지수 전망에 의존하는 만큼 최근의 조정국면 탈피가 선행돼야 하고, 조정 탈피는 미국 경기 회복과 증시 불확실성 해소가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성 연구원은 “국내 경기 모멘텀을 수출에서 찾는다고 하더라도 우리 수출과 미국의 산업생산과의 높은 상관관계를 고려할 때 단기간 내에 본격적인 수출경기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이 같은 관점에서 LG투자증권 강현철 연구원은 “통상 금리인상과 주가가 상반된 관계를 가지지만 뒤집어보면 금리 인상이 경기 회복의 반증자료라는 의미이기도 하다”며 “경기 회복속도에 대한 판단지표로 미국내 장ㆍ단기 금리 동향이 유용한 지표가 될 수 있으며, 역설적으로 금리가 올라야 경기가 산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조화속 차별화에 주목
LG 강 연구원은 “한ㆍ미 주가 동조화의 시세 흐름에 순응할 경우 미 증시에서 상승 기조에 있는 업종을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올 1월2일 이후 MSCI 미국지수 내 음식료업종과 담배 등이 포함된 필수소비재(Consumer Staple) 산업 주가가 지난 주말까지 11.6%의 차별적인 반등에 성공하는 동안 MSCI내 한국 관련업종 지수도 34.6%가 올랐고, KOSPI 음식료 업종지수 역시 지난 해 12월28일 916.05에서 4월30일 1,227.54로 32% 올랐다. 또 금융(2.9%) 기초소재(6.2%) 유틸리티(5.6%) 등 미국지수가 상승한 업종도 상대적으로 주가상승률이 높았다. 이와 함께 차별화의 큰 기준인 실적에 근거해 시가총액 상위 우량주 중심의 실적차별화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게 증시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굿모닝증권 투자분석부 현종원 연구원은 “당분간 지수상 부정적인 흐름이 예상되지만 한ㆍ미 양국의 주가차별화 전제조건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중기적인 관점에서 실적이 검증된 지수관련 우량주나 낙폭과대주 등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고 말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미국 시장은 지금 하락추세대
한국 증시가 상승, 반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 증시가 반등해야 한다는 지적이 대세다. 그러나 현재 미 증시는 중ㆍ장기적 하락 추세대에 빠져있어 당분간 의미있는 반등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먼저 기술주 비중이 큰 나스닥 지수의 경우 2000년 초 5,000포인트까지 상승, 고점을 찍은 이후 2년 이상 ‘함정’에 갇혀있다. 지난 해 9ㆍ11테러 당시 1,400대까지 추락했다가 지난해 12월엔 2,000포인트를 회복하기도 했지만 1월 2,098이었던 고점이 3월에는 1,946, 4월에는 1,832으로 낮아지며 다시 하락추세대로 복귀했다.
29일(미국시간) 나스닥 지수는 6개월간 최저치인 1656.93까지 떨어졌고 30일에도 소폭 상승하는데 그쳤다. 월가에선 나스닥 지수가 지지선이었던 1,700선을 하회함에 따라 테러때 수준까지 추가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LG투자증권 이윤학 연구위원은 “나스닥 지수는 현재 비상구가 안 보이는 상태”라며 “반등은 그야말로 기술적 반등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스닥 지수의 반등을 기대할 수 있는 시점으로 2ㆍ4분기 말이나 3ㆍ4분기 초를 꼽았다. IT 설비 투자가 지난해 마이너스에서 최근 플러스로 돌아서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하반기엔 IT 경기 회복과 나스닥 지수의 반등이 기대된다는 것.
전통주 중심의 다우존스지수도 내세울 게 없다. 2000년 초 1만1,200선을 돌파했던 다우존스지수는 이후 1만선을 중심으로 길게 횡보하고 있다. 9ㆍ11테러 직후에는 8,200대까지 폭락했고 지난 3월 잠시 1만선을 탈환하기도 했지만 이후 다시 하락세다.
다우존스지수는 30일(9,946.22) 큰 폭 상승하기는 했으나 전날인 29일 9,819.87까지 떨어지는 불안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 애널리스트는 “최근 종합주가지수가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미 증시가 하락추세대에 있다는 점에서 추가 하락 리스크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일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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