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고 착잡하다. 너무 서러워 차라리 엉엉 울고싶은 심정이다.” 대우차 매각협상을 진두지휘한 산업은행 정건용 총재가 30일 본계약 체결후 뜻밖의 소회를 털어놓았다.지난 2년여 동안 ‘대우 악몽’에 시달려 온 채권단 관계자들에겐 ‘경축행사’나 다름없는 이날 본계약 조인식에서도 그의 표정은 무척 어두웠다.
오히려 빈소를 찾은 조문객마냥 침통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대우차의 새 주인인 미국 제너럴 모터스(GM)가 준비한 저녁 리셉션에도 일찌감치 불참 통보를 했고, 1일 김대중 대통령과 GM 잭 스미스 회장의 면담에 배석해 달라는 청와대의 간곡한 요청 역시 정중히 거절했다.
본계약 행사를 마친 뒤 일부 출입기자와 가진 저녁 자리에서 정총재는 협상 기간 중 겪었던 마음고생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는 “이 땅에서 두 번 다시는 대우차 매각 같은 비굴한 협상이 재현되어선 안 된다”는 말부터 꺼냈다. “우리에겐 해외매각 이외엔 다른 어떤 대안도 없었기 때문에 협상 내내 (GM한테) 일방적으로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칼자루를 진쪽이 저쪽이라 억울해도 싫은 소리 제대로 못했다. 너무도 자존심 상하고, 분통이 터져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속앓이를 한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당장이라도 협상을 깨버리고, 야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적도 많았다.”
허리를 굽혀가면서까지 좋은 기업을 외국에 넘겨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는 것이다. 정 총재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GM측의 ‘고자세’로 협상이 여러 차례 ‘완전결렬’의 위기를 맞았다고 귀띔했다.
그때마다 그는 GM측에 “다른 원매자를 찾겠다” “대우차를 정상화하는 비상계획을 마련했다”고 협박, GM 대표들을 협상테이블로 다시 불러내 파국을 모면하기도 했다.
그는 “GM의 요구사항이 너무 과도해 한때 압박용으로 일본 도요타 자동차 회장을 만나러 가기도 했지만 실제로 GM 외에는 뾰족한 대안도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며 “헐값이란 사겠다는 경쟁자가 여럿이 있어 가격비교가 가능할 때나 나올 수 있는 말”이라며 헐값시비를 반박했다.
변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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