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옛 양화나루 모래밭에 작은 봉우리가 있었다.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작지만 아름다운 선유봉이었다. 그러나 이 봉우리는 1950년대 섬으로 변하고 말았다.
서울시가 한강 둑을 보강하는 공사를 하면서 이곳에서 많은 토석을 채취해 봉우리가 사라지고 이름도 선유도로 바뀌었다.
제2한강교(양화대교) 건설 때 징검다리 역할을 했던 이 섬은 오래 버려져 있다가 79년 선유 수원지로 바뀌었다.
팔당에서 끌어온 물을 정수해 서울 서남부 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섬이 이번에는 공원으로 변신했다.
지난 해 수원지를 폐쇄한 서울시가 160억원의 예산을 들여 4월 말 선유도 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한강시민공원과 섬을 연결하는 무지개 다리를 놓고, 3만3,000여평 섬 전체를 공원으로 꾸몄다. 규모에 비해 예산이 적은 것은 국내 첫 ‘재활용 생태공원’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기존 시설물의 일부를 이용한 설계와 시공은 용도폐기 구조물의 재활용 시범사례로 홍보될 충분한 가치가 있다. 콘크리트를 잘게 부순 골재, 폐 송수관을 이용한 미끄럼틀 등이 눈길을 끈다.
■‘시간의 정원’은 이 공원의 대표적인 시설이다. 가로 세로 41m, 깊이 5m 규모의 침전지 두개를 활용한 이 공간에는 정지된 시간의 흔적이 잘 나타나 있다.
콘크리트 벽 일부를 활용한 이 공간은 이 곳이 한 때 수원지였음을 증거해주는 상징시설이다.
보기 흉한 콘크리트 벽이 생명체와 어울려 이런 조화를 이룰 수도 있구나 싶다. 구조물의 칙칙한 색깔, 거친 표면, 가지런하지 않은 선이 갖가지 수생식물과 대나무 꽃나무 등 조경식물 들과 어우러진 모습이 주변 경관과도 묘한 조화를 이루는 듯 하다.
■공원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모습은 거대한 시간의 정원이다.
도시의 남북을 병풍처럼 두른 북한산과 관악산의 톱니 같은 연봉, 유장하게 흐르는 한강물과 시민공원의 너른 풀밭은 옛모습과 그리 다를 데가 없다.
그러나 한강 양안의 고속화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물결과 숨이 막히는 고층 아파트 숲, 촘촘히 걸려 있는 한강다리 같은 구조물들은 서울이 이렇게 빠르게 변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걱정을 안겨준다.
앞으로 몇 십년 후 선유도와 서울은 또 어떻게 변할까. 시간의 정원처럼 세월이 정지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나이 탓 만은 아닐 것이다. 며칠 전 선유도 공원을 거닐며 곱씹은 생각이다.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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