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만 믿는다!”월드컵 개막을 정확히 30일 앞둔 지금 거스 히딩크 축구대표팀 감독은 온 국민의 기대와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우리와 일본의 안마당에서 함께 열리는 꿈의 제전에서 들러리가 아닌 주인공이 되려면 16강 진출은 필요조건이고 이를 충족시킬 열쇠는 바로 히딩크 감독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히딩크도 16강을 향한 희망의 빛을 뿜어내고 있다. 코스타리카ㆍ중국과의 평가전에서 잇달아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낳은 히딩크는 “기량과 체력, 조직력 모두 눈에 띄게 좋아졌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16강 얘기가 나올 때마다 “월드컵 본선 무대가 활짝 열리는 6월이면 폭발적인 전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한 약속을 지켜내고 있는 셈이다.
곡절도 많았다.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4강에 끌어올린 히딩크는 지난해 5월 프랑스에 0_5로 대패, ‘오대영’이라는 조롱어린 별명과 함께 자질론에 시달렸다.
지난해 11월 크로아티아를 2_1로 꺾고 겨우 자존심을 만회한 그는 2월 북중미골드컵에서 부진, 다시 수렁에 빠지는 듯 했다. 그는 그러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마침내 지난달 핀란드에 2_0 승리를 거두면서 화려하게 부활, 자신감을 되찾았다.
히딩크의 자신감은 철두철미한 프로정신과 탁월한 지도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2000년 12월 취임 일성으로 “16강 진출의 밑그림을 완성했다”고 말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립서비스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훈련의 완급을 조절하면서 개막 직전까지의 일정을 톱니바퀴처럼 조정해놓은 걸 보고 역시 다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연인 엘리자베스로 대표되는 히딩크의 사생활과 용병귀화 문제 등을 둘러싸고 마찰을 빚었던 이 위원장도 그의 프로정신에는 고개를 숙인다.
히딩크는 세계 최고 수준의 감독답게 선수와 코칭스태프의 장단점을 완벽히 파악, 팀을 효율적으로 이끌고 있다. 그의 근성과 승부사적 기질은 훈련과 실전, 일상생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핌 베에벡 수석코치는 “히딩크는 지독히 현실적이다. 16강 믿음이 없었다면 서울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규율과 절도를 강조하며 선수들을 다루는 용병ㆍ용인술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훈련을 게을리하면 제 아무리 스타라도 애써 외면하고 자신감이 지나쳐 ‘오버’하는 경우 가차없이 경고를 보낸다.
허 진 언론담당관은 “튀니지전에서 이천수가 큰 실수없이 교체된 이면에는 기량 연마보다 매스컴에 연연하는 생활태도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튀는 골키퍼 김병지, 팬을 몰고 다니는 안정환과 이동국 등을 조련하는 과정에도 개개인의 임무와 함께 팀워크를 중시하는 그의 철학이 녹아있다.
그렇다고 승부에만 매달리는 냉혈한은 아니다. ‘히딩크가 아니라 히틀러’라고 불릴 정도로 카리스마가 강하지만 훈련 분위기를 자유롭고 쾌활하게 유지하는 자상함을 지니고 있다.
송종국은 “잘못을 지적할 땐 호랑이 같지만 농담과 쇼맨십을 섞어가며 사기를 북돋을 때는 마치 할아버지 같다”고 말했다.
학연과 지연, 언론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히딩크는 또 ‘질(Quality)’을 유일한 평가 잣대로 활용, 성실하고 향상된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에게는 언제든 기회를 줘 쓸데없는 불만의 소지를 없애고 있다.
본선 맞상대인 폴란드ㆍ미국이 최근 평가전에서 신통치 않은 플레이를 보인데 대해 “상대평가는 무의미하다”며 말을 아꼈던 히딩크는 “국제수준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는 만큼 이들 국가를 충분히 이길 수 있다”며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이종수 기자
jslee@hk.co.kr
이준택 기자
nagne@hk.co.kr
■이름으로 풀어본 히딩크 축구철학
거스 히딩크 감독이 대표팀을 이끈지 1년4개월. 그와 함께 그라운드에 땀을 쏟은 선수들은 히딩크의 메시지를 충실히 체득했다. 그의 축구철학은 히딩크라는 이름에도 숨어있다.
(히)어로(heroㆍ영웅)의 투지
그는 투쟁심을 강조한다. 경기 중 퇴장을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상대의 기를 꺾을 수 있는 플레이를 원한다.(유상철)
(딩)딩한 축구
(딩딩하다= 크면서도 옹골차다ㆍ든든하고 힘이 세다)
문제는 체력. 히딩크의 파워트레이닝은 월드컵 개막전까지 계속될 것이다. 폴란드와 미국을 제압할 수 있는 열쇠도 결국 체력 향상을 통한 경기지배력에 있다.(이용수 기술위원장)
(크)리스털(결정ㆍ結晶) 같은 조직력
세계 최고의 선수들도 매일 30분씩 패스연습을 한다고 강조한다.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매순간 공수의 균형을 갖춰 조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이다.(송종국)
■히딩크의 말… 말… 말
▶공이 하늘에서 얼어붙겠다- 대표팀 감독 취임 후 울산에서 첫 훈련을 가진 2001년 1월 센터링과 슛이 공중으로 치솟는 고질적인 단점을 지적.
▶반드시 이긴다는 잔인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때론 사고뭉치가 필요한 데 아무도 악역을 떠맡지 않는다-지난해 8월 유럽전지 훈련에서 우리 선수들은 너무 몸을 사리고 순진하게 플레이를 하는 등 근성이 부족하다고 일갈.
▶선수들끼리 형이라는 호칭을 쓰지 말라-지난해 12월 강연에서 나이에 따라 지나치게 서열을 따지면 경기중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
▶승리를 위해 잔꾀(Trick)를 부리는 건 순진한 발상이다-지난해 연말 기자회견에서 북중미골드컵에 나가면 전력이 노출될 수도 있다는 이의제기에 대한 반론.
▶킬러(Killer) 본능이 필요하다. 이 나이에 내가 골을 넣으란 말이냐-올1월 북중미골드컵에서 약체 쿠바를 상대로 한 골도 넣지 못하자 골가뭄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
▶나는 매우 다혈질이다. 그녀가 곁에서 자제력을 길러준다-올 2월 여자친구 엘리자베스와 공식석상에 동행하게 된 행동을 옹호.
▶ 6월이면 세계가 깜짝 놀랄 일을 저지르게 될 지 모른다-올 3월 유럽전지 훈련 때 16강 진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자신감을 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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