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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盧후보와 韓美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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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盧후보와 韓美관계

입력
2002.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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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노무현 후보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미국에 볼 일 있으면 간다. 별 볼 일 없어도 간다. 그러나 국내 정치용으로 사진찍기 위해 가지는 않는다”면서 미국과는 대등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노 후보는 또 미국이 자신에 대해 불안해 할 것이라는 생각은 사대주의 문화의 잔재이며 청산해야 할 낡은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발언은 노 후보가 대선 후보로서 미국과의 관계를 미리부터 우호적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이해된다.

노 후보의 자세는 대미 관계에서 맹목적인 저자세에서 벗어나 좀 더 자주적인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는 면에서 올바른 것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과 차세대 F-X 사업을 둘러싼 미국의 압력 의혹 등으로 악화한 국민의 반미 감정을 고려할 때 노 후보는 국민의 정서와 함께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은 그 동안 노 후보에 대해 지적되었던 안정성 부족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다.

이제는 즉흥적 대응이 아닌 좀 더 안정되고 체계적인 비전과 정책노선을 제시할 때이다.

그런 면에서 민주당 경선에 출마한 개인이 아닌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 발언으로서는 신중하지 못했다.

국민은 민주당의 경선 과정에서 나타난 노 후보의 안정적이지 못한 면을 알고 있으며 이러한 특성은 그의 직설적이고 솔직한 감정 표현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노 후보는 이제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시선도 의식해야 할 때이다. 우리의 외교·안보와 밀접하게 연관된 국가들과 관련해 말을 최대한 아껴야 한다.

특히 남북관계에서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형성하고자 한다면 속내를 드러내지 말고 치밀하게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여당 대선 후보의 발언이 한반도 정세를 불안하게 몰고 간다면 안 될 말이다. 노 후보는 지금보다 세련된 언행을 훈련할 필요가 있다.

부시 미 대통령도 당선되기 이전에 멕시코를 제외하고는 해외 여행을 3차례 밖에 하지 않았고 단어 선택의 실수로 곤욕을 치르곤 했다.

국제 사회는 노 후보를 통해 한국 사회를 바라본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이제 8개월 남은 대선 과정을 통해 세련된 국제적 감각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경선 과정에서 정계개편을 주장했던 노 후보가 정계개편 공론화에 나서고 있다.

지역 중심의 정당 체계를 이념과 정책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명분은 설득력이 없다.

YS와 DJ 중심의 정계개편이 또 다른 지역구도를 탄생시키는 것은 아닌지, 과거의 민주화 세력을 지금 결집하는 것이 정책과 이념구도의 정당 체계를 만드는 것인지 묻고 싶다.

3김(金)식 정치가 종식되지 않고는 지역주의 정치의 타파는 쉽지 않다는 것을 노 후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만일 대권을 위한 영남권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이는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국민이 총선에서 보여준 여소야대의 민의를 상황 논리에 의해 인위적으로 바꾸지 말기 바란다. 정계개편 단어만 들어도 국민은 지겨워 하고 있다.

정계개편보다 정책노선 다듬기에 힘쓰기 바란다.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국민은 여당 대선 후보의 체계적이고 일관된 정책노선이 제시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회보장과 경제성장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현 대북정책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대등한 한미관계와 한국 주도의 남북관계를 이끌어낼 것인지, 국가보안법과 주한미군 문제로 인해 발생 가능한 남남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에 대한 소신을 일관되게 제시해야 할 시점이다.

국민은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를 원하고 있고 남북관계도 우리가 주도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미국에게 맹목적으로 굽힐 필요는 없지만 한미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도록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대선을 통해 우리가 한미관계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윤종빈 명지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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