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유혈 사태를 3월 초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보도하고 있다.그런데 가끔 가슴이 아려오는 기사를 접할 때가 있다.
날카로운 눈으로 관찰하고 차가운 가슴으로 분석해야 할 국제정세의 와중에서 이런 감상적 기분에 젖어든다는 것은, 스스로 경계해야 할 터이지만 비극을 보며 느끼는 인지상정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최근 한국일보에 보도된 한 기사를 다시 읽어 본다.
“제 무덤은 먼저 간 무하마드의 무덤처럼 꾸며 주세요. 너무 크지 않게요. 그렇게 순교자 형제들 옆에 눕고 싶어요. 저 때문에 울지는 마세요. 다만 시간 날 때 가끔 찾아주시면 돼요.”
유세프 자콧은 4월 23일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에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에 친구 3명과 함께 폭탄을 안고 돌진했다.
그러나 담을 넘기도 전에 이스라엘 저격수의 총에 맞아 숨졌다. 이 글은 유세프가 가족에게 남긴 짧은 유서의 전부다.
날 슬프게 한 것은 그가 14세의 소년이라는 사실이다.
열네 살 소년이 진정으로 민족과 국가의 해방을 위한 대의를 품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보다는 이제는 어린이와 여고생까지 배에 폭탄을 둘러 내모는 중동의 비극을 본다.
영문도 모른 채 카페에서, 시장에서 죽어가는 이스라엘 민간인들도 불쌍하다.
테러 문제는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4월 초에 열린 이슬람회의기구 회의장에서도 논란이 됐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민간인에 대한 이스라엘군이나 자살폭탄 공격은 모두 테러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은 한 국가를 점령해 버린 국가 테러리즘이야말로 최악의 테러리즘이라고 반박했다.
국제부 기자들 사이에도 논쟁이 벌어졌다.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훙커우 공원의 거사는 전투행위라는 일본 육군의 문서가 최근 발견돼 크게 보도됐다.
그렇다면 피지배 민족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테러 역시 마찬가지 대접을 받아야 할 게 아닌가.
그래서 한국일보는 이스라엘과 미국 언론이 어떻게 표현하든 ‘자폭 테러’가 아닌 ‘자폭 공격’이라고 쓰기로 했다.
이-팔 유혈 사태에서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제3자로서는 말하기 어렵다.
이스라엘은 자폭 공격에 대한 자위권을 내세워 몇십 배의 강도로 보복을 하고 미국의 눈치를 본다. 이스라엘의 이익은 미국의 이익에 반하지 않으니까. 미국은 적당히 두둔하다 국제 여론을 살펴보며 혼내기도 한다.
아랍국들에 특사도 파견하고 지도력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 결국 유일한 슈퍼파워로서 조정자 입장을 과시한다.
이-팔의 비극은 선과 악의 잣대가 없고 오직 힘과 정치적 논리와 이익만이 존재한다는 데 있다. 인도주의는 비정부단체나 지식인이나 언론의 몫일 뿐이다.
뉴밀레니엄의 초입, 빈곤과 기아의 문제를 뒤로 하고 지구촌은 테러와 보복의 확대재생산 앞에 서 있다.
백악관과 펜타곤은 오늘도 이라크를 공격할 D데이를 계산하고 있다. 누구나 다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도 멈출 수 없는 것, 그것 또한 비극이다.
한기봉 국제부장
kib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