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은행이 지난해 말 서울 서초동에 문을 연 VIP고객 전용 점포 ‘프레스티지 로얄클럽’.개폐장치에 고객번호를 입력하고 출입문을 들어서면 힐튼호텔에서 예절 교육까지 받은 부자고객 전담 은행원 ‘프라이빗 뱅커(PB)’가 안내를 한다.
가스총을 찬 청원경찰, 손때 묻은 여성지, 대기표, 커피 자판기 등은 어디에도 없다.
붉은 빛 감도는 갈색톤 인테리어에 은은한 전등빛, 45인치 벽걸이 TV, 영국산 ‘웨지우드’ 찻잔에 브라질산 원두커피…. 한빛은행 로고만 빼면 75평 실내는 고급 갤러리나 특급호텔 라운지와 다를 바 없다.
이곳 책임자인 김우신 팀장은 “고객들에게 ‘선택된 소수’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은행 특유의 대중성을 탈색시켰다”라며 “하루 방문하는 고객은 20명 안팎”이라고 설명했다. ‘그들만의 세계’라는 폐쇄성을 강화할수록 실적이 더욱 늘어난다는 얘기다
실제로 수입산 체리목 출입문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서초ㆍ대치ㆍ분당 등 3개 VIP센터에 걸쳐 1,500여명에 불과하다.
예탁금 1억원 이상인 고객들이다. 하지만 명함을 내밀려면 3~4억원은 돼야 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귀띔.
PB들은 고객들에게 가능한 모든 상속ㆍ증여세 절세 요령을 일러주고, 예금ㆍ증권ㆍ보험ㆍ부동산 등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제시해준다.
부동산 시장이 좋으면 은행 상품을 줄여서라도 부동산 투자를 늘리라고 조언한다. PB들도 벅찬 문제가 생기면 본점의 세무사나 부동산 전문가들이 동원된다.
대화 내용이 ‘돈 문제’만은 아니다. 자녀 교육에서부터 배우자 문제, 건강, 여가 생활, 정치, 스포츠 등 무궁무진하다.
김 팀장은 “부자 고객들을 잡기 위해서는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돼야 한다“며 “외국 영화에서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와 상담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송사(訟事)가 있는 고객에게는 변호사를, 건강에 이상이 있는 고객에게는 전문병원을 연결시켜준다.
본점에서는 PB들의 교양수준을 높이기 위해 국내외 정세와 경제ㆍ문화 등에 대한 고급 정보를 매일 제공한다. 수십대 1의 내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PB들이지만, 워낙 정보에 민감한 부자 고객들에게는 한치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 생활과 관련한 각종 서비스도 ‘VIP 마케팅’의 중요한 수단. 이곳 이벤트홀에서는 와인 시연회와 자녀들의 유학ㆍ연수 설명회가 개최되며 은행 수익에 기여도가 높은 고객에게는 수십만원짜리 공연티켓이나, 특급호텔 이용권도 정기적으로 선사한다.
생일이나 명절이면 선물이 제공되지만, 한빛은행 로고는 안찍는 게 불문율이다. 자칫 ‘격‘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본점 PB 지원팀 김인응 과장은 “골프, 골동품 수집 등 동호회도 만들 계획”이라며 “PB센터의 목표는 고객들의 자산은 물론, 생활 전반을 관리하는 ‘집사’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 '돈되는 소수' 모시기 은행 PB마케팅 경쟁
은행들이 “계층간 위화감을 부추긴다”는 일부 비난에도 불구하고 VIP고객을 위한 PB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한마디로 ‘돈이 되기때문’이다.
한 시중은행의 경우 개인고객 1,200만명 가운데 상위 1%가 예금액의 54% 차지하고, 상위 10%가 은행수익의 87%를 낸다.
100명의 고객에게 1만원짜리 서비스를 하는 것보다, 1명에게 100만원짜리 서비스를 하는 것이 훨씬 수익이 높다.
시중은행 가운데 PB 마케팅의 원조는 하나은행. 20여년간 단자사(한국투자금융) 영업을 하면서 고액 자산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탓이다.
5억원 이상 고객을 위한 ‘하나골드클럽’은 증권 보험 투신 등 하나은행 전 계열사들과 연계한 종합자산관리는 물론 부동산 미술품 여가활동 건강관리 중매 등 생활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미은행도 1억원 이상 고객을 대상으로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최근 우수 고객을 대상으로 해외 유명 브랜드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
서울은행은 장례식때 ‘캐딜락’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지난달 VIP고객들을 힐튼호텔에 초청, ‘쿠킹 페스티발’을 개최하기도 했다. 국민은행과 조흥은행도 최근 PB팀을 전면 개편하고, 테스크포스팀을 구성했다.
부자고객들만 가입할 수 있는 ‘부자용 금융상품’도 잇따르고 있다. 하나은행의 ‘마이초이스신탁’은 최소 투자금액이 1억원 이상으로 주식비율을 고객이 조절할 수 있고 전문 상담사가 일대일 상담을 해준다.
신한은행도 최근 채권형 펀드로의 전환 시점을 자유롭게 지정할 수 있는 ‘1인 1펀드’방식의 주식투자상품을 선보였는데, 최소 가입금액이 5,000만원이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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