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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사이공 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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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사이공 함락

입력
2002.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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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4월30일, 8주동안의 작전 끝에 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 깃발을 내세운 베트남민주공화국(북베트남) 군대의 장갑차가 베트남공화국(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지금의 호치민)을 함락시켰다. 이로써 짧게는 십 수년, 길게는 30년에 걸친 베트남 전쟁이 막을 내렸다.베트남 민중은 제2차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 뒤에도 프랑스와 미국이라는 두 외세에 맞서 싸워야 했다. 기다란 전쟁의 와중에 베트남이 선거에 의한 통일 정부를 세울 기회는 두 차례 있었다. 첫번째는 1954년 7월의 제네바 협약으로 1956년 프랑스군이 베트남에서 완전히 철수했을 때였다.

이 협약에 따르면 그 해에 베트남은 남북 총선거를 통해 통일 정부를 구성하게 돼 있었다. 그러나 남베트남 정부는 협약을 거부했고, 프랑스와 임무를 교대한 미국에 의해 전쟁은 점차 확대됐다.

1965년의 이른바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을 강화하며 전쟁의 직접적 주체로 나선 미국은 남북 베트남 민중의 완강한 저항과 국내에서의 반전 운동 고양으로 1973년 1월 북베트남과 파리 협정을 맺고 두 달 뒤 베트남에서 군대를 철수했다.

파리 협정 역시 총선거를 통한 베트남 통일을 규정하고 있었으나 사이공 정부는 평화적 통일의 이 두 번째 기회마저 거부하며 버티다 1975년 오늘 역사의 뒤꼍으로 물러났다. 남베트남의 민족해방전선과 북베트남의 베트남민주공화국은 이듬해에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법적 통일을 완수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패배한 전쟁이었다. 그것이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달리 공산주의에 맞선 자유의 성전(聖戰)이라기보다 베트남 민족의 독립에 맞선 더러운 제국주의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미국인들의 굴욕감은 이중적이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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