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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으로 현실읽기] (3)지눌의 '수심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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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으로 현실읽기] (3)지눌의 '수심결'

입력
2002.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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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나와는 만난 적도, 만날 기약도 없지만 신문 한귀퉁이에서 마주친 아이의 눈망울이 오래도록 눈에 선하다.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지는 포탄을 두려워하며, 종일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에 두려워하며, 언제 군인들이 들이닥쳐 집을 부수어버리고 마을 길을 불도저로 파버릴까 두려워하며,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태어나는 순간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공포의 기억은 이제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 깊은 기억 속의 공포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분노와 복수심으로 가득차게 한다. 보잘 것 없는 무기에 반비례해서 그들의 분노는 높아간다.

이들을 몰아대는 상대의 무기는 어떤가.

최첨단 폭격기와 개인화기들, 거대한 전차와 정확도를 자랑하는 미사일이 어느 곳에서든 노리고 있다.

게다가 배후에는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는 막강한 우방이 모든 비난을 막아준다.

그 뿐인가, 그들의 우방은 우리같이 힘없는 나라 후려쳐서 자기편 들지 않으면 정의가 아니라고, ‘악의 축’이라고 마구 몰아세운다.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무수한 학살과 파괴가 일상처럼 보일 정도다.

이 추악하고 폭압적인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모든 사물들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이라면, 도대체 추악한 세계는 어떤 인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가.

인과를 정확히 인식하는 첫걸음, 그건 뜻밖에도 내 마음을 살피는 일에 있다. 이것은 지눌(知訥ㆍ1158-1210)이 우리에게 권하는 기본 원칙과도 같은 요구다.

그는 ‘수심결(修心訣)’에서 모든 인연 조건의 출발점을 자신의 마음에서 찾으라고 말한다.

마음을 살피는 일은 욕망을 비우는 일이기도 하다. 불성(佛性)은 바로 그 순간에 발현된다.

그러나 스치듯 깨달음의 순간이 와도 이전의 습속은 내 몸에 이미 기억되어 있어서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마음처럼 몸이 가도록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수행이다.

마음 관찰을 통해서만이 지혜로운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눌이 ‘돈오점수(頓悟漸修)’와 ‘정혜쌍수(定慧雙修)’를 내세운 것도 이런 맥락을 가진다.

말뿐인 깨달음, 수행이 따르지 않는 깨달음을 지눌은 경계한다. 실천의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인연 조건은 완전히 달라진다.

폭력과 폭력이 만나서는 해결될 일이 전혀 없다. 어차피 한쪽이 정의라면 다른 쪽은 불의일 수밖에 없으므로, 거기에는 끝없는 복수와 증오와 분노가 있을 뿐이다.

시간이 갈수록 인연은 계속 얽힐 것이다. 그 얽힘을 정확히 인식하지 않는 한 세상의 폭압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폭력의 고리를 끊지 않는다면 폭력의 순환에서 우리는 절대로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먼저 마음을 살피고 나를 비우는 실천이 전제되지 않는 한 우리는 서로를 폭압적인 불의라고 비난하기를 멈추지 못한다. 간디가, 함석헌이, 달라이 라마가 폭력을 도구로 삼았다면 그 힘을 얻을 수 있었겠는가.

그래도 나더러 먼저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한다면 참 망설여질 게 뻔하다.

저렇게 깡패같은 놈들의 행패에 맞서야 하는 마당에 마음을 살피라고? 저들은 우리의 소망과 상관없이 폭력을 휘두르는데, 나는 기껏 마음을 살피기나 하라고?

정말 마음을 돌아보아야 하는 건 바로 저 깡패같은 자들이 아닌가. 그래도 지눌의 대답은 한결같다. 네 마음을 닦으라는 것.

아무리 그래도 마음을 살피는 일과 폭압적인 세계를 바꾸는 실천 사이에는 뭔가 찜찜한 비약이 있는 것같다.

내가 먼저 포기하는 것이 손해보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그렇게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지눌은 단호히 말한다. “직접 해 봐.”

/김풍기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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