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와 초등학교에서 각각 교사로 일했던 박상돈(朴商墩·74) 강선희(姜善熙·70)씨 부부는 정년퇴직 후 삼성서울병원에서 자원봉사의 길을 걷고 있다.두 사람은 “자원봉사는 자신을 성장시키고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바로 스스로를 위한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 부부는 40여년 교직에서 티없이 맑고 순수하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과 같이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을 늘 즐겁게 생각한다.
그 감사함을 정년퇴직 후 에는 봉사활동으로 갚자고 약속했다. 봉사활동은 물론 젊었을 때부터 해오던 일이기도 했다.
천주교 신자였던 우리 부부는 늘 시간이 나면 성당 일을 위해 달려가곤 했다. 퇴근 후 우리가 나란히 성당을 들어서는 것이 익숙해져서인지 어쩌다 한 사람만 가면 주위에서 ‘이 빠진 것 같아 서운하다’는 말을 하곤 했다.
두 사람이 함께 자원봉사를 하다보면 서로를 모니터 해줄 수 있어 더 좋았던 것 같다. 상대방의 행동이나 모습을 눈 여겨 보았다가 봉사활동이 끝난 뒤 “오늘 선생님이 이 때 이렇게 하셨더라면 더 좋을 뻔 했어요”라고 조언한다.
교직에 있었던 관계로 우리는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늘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 때문인지 우리는 여느 부부들처럼 다투는 일이 있어도 곧 화해했고, 주위에서는 ‘잉꼬부부’로 알려져 있다.
봉사를 통해 두 사람의 유대가 더 깊어질 수 있었던 셈이다. 남편이 정년 퇴직하던 해(1995년), 나는 정년까지 4년이 남았지만 남편과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명예퇴직을 했다.
어떤 곳에서 봉사를 할까 찾아보던 중 삼성서울병원에 자원봉사실이 있고 많은 분들이 봉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1996년 초 혹시 나이가 많아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면서 신입사원이 면접에 임하는 자세로 조심스럽게 그 곳을 찾았다.
반갑게 맞아 주시는 실장님과 면담을 한 후 봉사자로 선정돼 봉사자 교육을 받고 1주일에 한번씩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남편과 둘이서 입·퇴원계 봉사로 시작했다가 남편은 2층 내과 안내를 거쳐 지금은 1층 외과 안내를 맡고 있다.
나는 중앙 로비 안내를 거쳐 지금은 내과에서 혈압측정을 해주고 있다. 남편은 때때로 보호자 없는 지체부자유 환자를 휠체어에 태워 본관 및 별관의 해당 진료과까지 데려가 진료받는 것을 도와주기도 한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우리 부부는 봉사활동 중 잘못된 점을 서로 지적하거나 격려해준다. 봉사활동은 정년 후 뚜렷하게 할 일이 없는 우리 부부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힘이 됐다.
봉사를 가기 전 날엔 내일의 봉사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단장하고, 봉사 당일은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현장에서는 작은 일에도 최선의 친절과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여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완수하려고 노력한다.
이 곳을 찾는 환자들은 1~2차 진료기관을 거쳐 3차 진료기관까지 오는 동안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우리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환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왔다.
특히 호스피스 활동은 특히 우리 부부에게 봉사의 어려움과 보람을 동시에 맛보게 했다. 병원 원목실에서 소개해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우울증 환자와 말기 암환자를 돌보았다.
처음엔 병실을 방문해도 눈길 한번 안 주며 말 한마디 않던 환자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를 반가와하고 심지어 손꼽아 기다리기까지 했다.
말기 환자들은 언제 타계할지 도무지 예측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덧없이 세상을 뜨곤 했다. 월요일 방문했을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수요일 다시 병실을 찾아갔을 때 영안실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 부부는 가족을 잃은 듯한 슬픔과 충격을 받곤 했다.
영안실을 찾아가 가족으로부터 환자 분이 마지막 가는 길에 우리를 애절하게 부르며 기쁨으로 눈을 감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눈물 속에서도 새삼 자원봉사자로서의 보람을 느끼곤 한다.
죽음을 앞둔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활동은 늘 죽음을 느끼는 일이다보니 하루에 세 명 이상은 돌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원목실 내규. 그러나 환자들이 기다리기 때문에 하루 10명이상 돌보게 되는 일도 적지 않다.
집에서 병원까지 왕복 4시간이 걸리는 거리에다, 계속되는 이별로 인한 정신적 피로가 누적되면서 남편은 체중이 줄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원목실 수녀님의 권고로 당분간 호스피스 활동을 쉬고 있지만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다시 호스피스 활동을 할 예정이다.
봉사가 우리를 젊게 만드는 활력소가 되는 것 같다. 또 환자나 보호자들이 “이렇게 좋은 일 하시니 복 많이 받으실 겁니다.
혹 다 못 받으시면 자손들이 받을 거구요”라고 축복해 줄 때면 다시 내 자신을 뒤돌아본다. 우리 부부는 남에게 베푸는 것보다 사람들로부터 받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함께 일하는 봉사자들로부터 친절과 성실을 배우며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통해 건강의 소중함을 터득한다.
나와 나의 가족만을 위한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 많은 이웃과 함께 하는 삶이기에 즐거움은 배가된다. 더욱 기쁜 일은 자녀들은 물론 손자 손녀들까지도 봉사의 즐거움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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