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내 탈북자들의 베이징(北京) 주재 외국 공관을 경유한 한국 탈출이 러시를 이룰 조짐이다.25일 밤 베이징 주재 독일 대사관에 진입한 탈북자 1명과 26일 새벽 미국 대사관에 들어간 탈북자 2명이 필리핀과 싱가포르를 경유해 28일 각각 서울에 왔다.
이들 3명의 한국행은 지난 해 6월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베이징 사무소 농성을 벌인 장길수군 일가족, 지난달 14일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한 25명의 탈북자에 이어 외국 공관을 탈출 루트로 이용한 3, 4번째 사례이다.
이번 사례는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또 중국 내 외국 공관 진입, 제3국 경유, 한국 행으로 이어지는 코스가 탈북자들의 망명 통로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현실화했다. 길수군 가족 등이 대로(大路)를 닦았다면, 이번 두 사례는 소로(小路)를 뚫은 것으로 비유된다.
중국 정부는 스페인 대사관 진입 당시의 처리가 선례가 될 수 없다고 밝혔지만, 사건 하루 만에 신속하게 이뤄진 제3국 추방, 한국 행은 스페인 대사관 때의 처리 방식과 같다. 독일 대사관의 한 관리는 “중국 관리들이 협상 과정에서 대단히 건설적인 접근 방식을 취했다”고 전했다.
이번 탈출은 탈북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과 삼엄한 경비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것이어서 재발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관측이다.
중국측은 스페인 대사관 사건 이후 지엔꿔먼(建國門), 산리툰(三里屯) 등 외국 공관 밀집 지역의 경비를 대폭 강화했다.
그러나 베이징에만도 100여 개의 외국 공관과 수십 개의 국제기구 사무실이 산재해 있고, 담장 높이도 대부분 2㎙ 이내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들어갈 수 있다. 독일 대사관에 들어간 탈북자는 대사관 담을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두 사례도 탈북자 지원단체가 지원한 ‘기획 탈출’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동시에 발생했다는 점도 그렇다. 지난 달 스페인 대사관 진입 당시 탈북자들은 당초 독일 대사관을 목표로 했다가 방향을 바꿨다.
스페인 대사관 탈출을 도운 것으로 알려진 독일인 의사 노르베르트 폴러첸 박사는 25일 탈북자의 독일대사관 진입 후 베이징에서 성명서를 배포하고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은 채 “더 많은 탈북자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이번에도 외국 공관에 진입한 탈북자를 북한으로 송환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장기간 붙잡아 두는 것도 국제여론만 악화해 실익이 없다는 판단 하에 속전 속결로 제3국 추방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부의 한 인사는 탈북자 문제를 묻자 “제발 조용히 처리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송대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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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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