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구조조정본부를 둘러싼 정부-재계간 논란이 재점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주 “구조본의 행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해 재계가 발언 진의 파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차 논란
구조본은 1998년4월 선단경영의 상징이었던 각 그룹 기획조정실(혹은 비서실)이 해체되면서 새로 탄생한 조직이다. 환란이후 외자유치, 부실계열사 정리 등 구조조정작업을 성공적으로 주도했지만, ‘무늬만 바뀐 옛 기조실’이란 지적도 줄곧 뒤따랐다.
구조본 논란이 처음 제기된 것은 2000년초 현대그룹 ‘왕자의 난’때. 형제간 분란과정에서 구조본이 계열사 인사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자 정부는 “명백한 불법이자 월권”이라고 규정했고, 결국 현대는 구조조정위를 해체했다.
■ 공정위 시각
이 위원장의 발언은 ‘왕자의 난’ 이후 2년 만에 고위당국자가 다시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정부의 주목 포인트는 구조본의 기조실 체제 회귀 조짐이다.
올해초 그룹의 각계열사 임원인사가 그룹 단위로 일괄 단행된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반증한다는 게 정부 시각이다. 아울러 계열사 파견직원이 구조본에서 해당 계열사 관련업무를 하지 않는다면 이 역시 불법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공정위가 구조본 문제를 그 동안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며 “당장 조사계획은 없지만 구조본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관심 있게 지켜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 재계 시각
구조본의 권한과 성격은 기업마다 크게 다르다. 규모와 권한이 가장 큰 삼성 구조본은 계열사간 업무조정기구 보다는 회장 보좌기구 성격이 짙고 영향력도 가장 강하다. 삼성 관계자는 “오너의 결단과 CEO의 전문경영능력, 그리고 구조본의 조정능력이 삼위일체가 됨으로써 오늘날 삼성의 경쟁력이 만들어진 것”이라며 ‘강한 구조본’의 순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LG 구조본은 지주회사 준비기구 성격이 강하다. LG 관계자는 “내년이후 지주회사가 출범하면 지금의 구조본은 지주회사로 그대로 흡수돼 지주회사 업무만 수행하게 될 것”이라며 “과거 기조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SK 구조본측도 “중국진출사업, 사업구조조정등 계열사 단위에선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곳이 바로 구조본”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그룹경영이 존속하는 한 계열사간 관계 조정 등 일정한 역할이 불가피하며, 지배구조 투명성에 대한 시장감시가 작동하는 만큼 ‘옛 기조실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구조조정본부란 명칭이 주는 ‘위기적 인상’ 때문에 언젠가는 명칭은 바꿔야 하며, 그 시기는 차기정권 출범초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황상진기자
april@hk.co.kr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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