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우리인류의 우환질고를 위해 의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몃사람이 못되고 첫재 의술을 파라서 땅이나 논을 작만하랴는 사람이 만흔 것은 의사가 돈을 만히 벌고 그만큼 사회상 대우가 있는 까닭이라 하겟지오”(나도향의 ‘J의사의 고백’, 1925년)1920년대 소설에 비친 의사상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라는, 오늘날 소설이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의사에 대한 인식이 이때부터 나타나고 있다.제 30회 종합학술대회의 ‘의학과 문학의 만남’ 심포지움에서 발표될 조남현 서울대교수의 ‘국내 소설속에 나타난 의사들의 모습’은 50여편의 한국 근ㆍ현대 소설을 통해 다양한 의사상을 제시하고 있다. 1920년대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문학에서 의사의 모습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환자에게 진료비가 없다는 이유로 약 한첩 주지 않고(최서해의 ‘박돌의 죽엄’, 1925) 일 원 한장이면 고칠 수 있는 감기환자에게 디프테리아에 걸렸다면서 15원쯤 든다고 거짓말한다. (한설야 ‘술집’, 1937) “Y병원에서는 주사약의 분량을 속였고 S병원은 엉터리였다. 그리고 H병원에서는 빈 약병을 팔았다” 박경리의 ‘불신시대’(1957)는 병든 의료계를 꼬집고 있다. 일제치하, 한국전쟁 후 등 민생이 척박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의 의사들은 ‘돈을 밝히는 장삿꾼’으로 그려졌다.
그런가 하면 같은 식민지 시대라도 김동인의 소설 ‘붉은 산’(1932) 에서는 의사가 인간 개조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계몽주의자로 영웅화된다. 말 한마디로 투견질과 싸움질을 업으로 하는 밑바닥인생 ‘삵’을 대오각성시키켜 는 대단한 존재이다. 이광수의 ‘사랑’ (1938)에는 남달리 성실한 치료자세를 지닌 명의 안빈을 그렸다. 세태소설의 모델로 평가되어 온 채만식의 ‘탁류’(1937)에서도 야학을 하고 무료병원을 경영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헌신적인 의사 남승재를 찾을 수 있다. 유 교수는 “의사의 이미지는 의사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인 체험에 기초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비교적 부르주아의 생활을 했던 김동인이나 이광수의 소설에서는 의사상이 긍정적이다”라고 해석한다.
2000년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했던 드라마 ‘허준’의 원작인 이은성의 ‘동의보감’(1990)이야말로 유 교수가 꼽는 최고의 의사소설이다. 드라마틱한 구성과 동의보감에 대한 탁월한 이해를 갖춘 ‘의사열전’이다. 침술이 당대 제일이라는 어의 양예수, 허준에게 살신성인의 가르침을 준 유의태, 비굴하고 출세지향적인 그의 아들 유도지 등을 통해 의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재주보다는 마음임을 설파한다.
조 교수는 그러나 “의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본격적인 ‘의사소설’이 우리나라에는 적은 편이다. 그만한 전문지식을 갖출 여유가 우리 문단에는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대부분 작품들이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의사의 ‘이미지’묘사에 그치는 편이다. 그는 “전문화ㆍ세분화가 진척되는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까뮈의 ‘페스트’같은 뛰어난 의사소설도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은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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