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도시의 거리에 나가니 벌써 나무들의 잎이 많이 피어버렸더군요.도시의 나무들은 계절을 앞서 가는 도시의 여인들처럼 자연 속에서의 속도를 훨씬 앞지르고 있었습니다.
아깝기 이를 데 없었어요. 나무들이 새순을 막 내어놓은 그 즈음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순간이거든요.
말랑말랑 여리고 작고, 때론 솜털이 보송한 싹을 부끄럽게 내놓은 모습은 예쁘지 않은 갓난 아이가 없듯이 모두 모두 예쁘답니다.
아직 햇볕을 충분히 받지 못해 제대로 초록빛을 내지 못하면서도 뒤집기를 하느라 안간힘을 쓰는 아기처럼 열심히 자라 오릅니다.
어린 나뭇잎들은 크게 자랐을 때와 사뭇 다른 모습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잎들은 자라면서 점점 두꺼워지고 진해지죠. 모진 바람, 변화무쌍한 환경의 변화, 때론 오염에 찌들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지는 것이겠지요.
뚜렷하게 종(種)의 특성도 나타납니다. 살아가면서 어린 시절의 순결했던 마음도, 보드랍던 피부도 점차 잃어버리고 세상과 적응하며 살아가는 우리네 사람들의 모습과 어쩌면 그리 같은지.
은행나무 이야기를 하려다가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은행나무의 잎이라고 하면 모두 노랗게 물든 가을단풍을 생각하지만 새로 난 작은 잎들은 참 귀엽답니다. 그 잎 사이에서 꽃이 핍니다.
은행나무에게 꽃이 있던가?
고개를 갸우뚱 하신다면 맨 처음 제가 보낸 편지를 잊으신 것이지요. 고등 식물들은 모두 꽃을 피웁니다.
구태여 사람과 비교하자면 여자에 해당하는 암술과 남자에 해당되는 수술이 꽃 한 송이 속에 있거나, 소나무처럼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지만 한 나무에 있는 종류도 있고, 은행나무처럼 아예 서로 다른 나무에 달리는 경우도 있지요.
암나무에는 암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수나무에는 수꽃이 피고 열매가 없습니다.
하지만 암꽃 혼자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암나무 근처 어디선가 수나무가 꽃가루를 날려 보내야만 수분이 가능한데 그 거리가 수백 m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은행나무도 마주봐야 열매를 맺는다는 말이 있는 것이지요.
황록색 수꽃은 실제로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은행나무 수꽃이라고 아는 것은 수십 개의 수꽃이 줄기에 붙은 꽃차례로, 길이는 2~3㎝정도입니다.
꽃은 모두 화려한 꽃잎을 가졌다는 선입견만 버리면 찾을 수 있지요. 암꽃은 아주 작은 숟가락처럼 생겼습니다.
은행나무는 유일하게 편모를 달고 있어서 스스로 몸을 이동시킬 수 있어 ‘정충’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도시의 거리는 은행나무 밑을 지나지 않고는 10분을 걷기 어려울 만큼 은행나무가 많은데 지금까지 은행나무의 꽃을 보지 못하셨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간 얼마나 우리 곁의 나무에게 무관심했는지를 잘 나타내어주는 증거랍니다. 오늘 나가서 은행나무 꽃구경 한 번 해보세요.
/이유미ㆍ국립수목원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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