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무의 말-나 희 덕
제게 잎을 주지 마십시오.
연록빛 날개로 잠시 날아오를 뿐
곧 스러질 잎사귀일랑 주지 마십시오.
제 마른 가지 끝은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졌습니다,
더는 쪼갤 수 없도록.
여기에 입김을 불어 넣지 마십시오.
당신 옷깃만 스쳐도
저는 피어날까 두렵습니다.
다시는 제게 말 걸지 마십시오.
나부끼는 황홀 대신
스스로의 棺이 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제 뿌리를 받아주십시오.
부디 저를 꽃 피우지 마십시오.
■시인의 말
눈부신 잎을 내고 있는 나무들 사이에서 한 나무가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을 들었다.
앙상한 가지 끝을 창(蒼)처럼 겨누고 있는 그 나무는 너무 일찍 깨달았거나 이미 지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서서 해마다 살아있는 시늉을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약력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김수영 문학상, 김달진 문학상, 올해의 젊은예술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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