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화선(畵仙)’이라는 뜻의 영화 ‘취화선’이 5월 칸영화제 본선에 진출한다. 임권택 감독에게 ‘춘향뎐’에 이어 두 번째로 전해지는 칸의 낭보다. ‘취화선’의 주인공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 화가 오원 장승업이다. 칸 진출에 앞서, 100년 전에 살다간 화가의 호방한 생애를 영화로 만나게 된 점이 우선 기쁘다. 월북화가 김용준은 오원을 “조선 500년 제일의 화가” 로 평한 적도 있다. 우리 교과서는 회화적 성취가 뛰어났던 오원에 대해 너무 가르쳐 주지 않았다.■오원은 고아였다. 남의 집에서 자라면서 내면의 예술적 충동과 재능을 느끼고 자력으로 화가가 된 천재다. 스승도 없이, 명가에 전하는 중국 그림을 보고 어느 날 붓을 휘둘러 발군의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문자는 해독할 수 없어 낙관은 타인이 대필했다. 그러나 긍지는 한껏 높아서 ‘오원(吾園)’이라는 호도 자부심에서 비롯됐다. 풍속화가 단원(김홍도), 혜원(신윤복)을 의식했던 그는 “너희만 원(園)이냐? 나(吾)도 원이다” 라는 오기로 호를 지었다.
■오원은 산수화와 새ㆍ짐승을 다루는 영모화, 그릇과 꽃가지를 그리는 기명절지화에 두루 능했다. 때로 과장도 보이지만, 그의 그림은 구도와 운필에서 대담하고 묘사는 치밀하다. 그림 속 매의 날카로운 발톱과 살기등등한 눈매 등은 보는 이의 오금을 저리게 한다. 오원은 자신의 천부적 재능과 충동에 충실하려 애쓰면서도, 신분에 상처 받고 제도에 저항한 인물이다.
■ 임 감독은 100년의 시대적 간극을 넘어 오원의 예술가적 개성에 깊이 끌린 듯하다. 그의 ‘서편제’와 ‘춘향뎐’은 판소리를 적극 차용하여 청각에 호소하는 역작이었다. ‘취화선’은 한국의 고유한 소리미학에, 그림이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추가한 강점을 지녔다. 장승업 역의 최민식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게 한다. 그는 근래 연기에서 거칠면서 섬세한 내면세계를 불꽃처럼 폭발시켜 왔다. 한국영화의 거장답게 원숙미를 더해 가며, 늙마에 황금종려상을 쥐고 싶어하는 임 감독에게 행운이 있기를 빈다.
박래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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