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민주당 탈당 문제가 26일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금까지는 여권 인사들이 사석에서 조심스럽게 거론하던 수준이었다.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긴 했지만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이날 김 대통령의 탈당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힌 게 계기다.청와대의 부정적인 반응 등에 비춰 당장 탈당이 이뤄지긴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이날 노 후보 발언을 신호탄으로 이 문제는 본격적으로 공개 논의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대통령 아들들 비리 의혹 수습, DJ와의 차별화 등 대선 전략 차원에서도 DJ의 탈당은 피할 수 없는 수순으로 여겨지고 있다.
노 후보는 이날 평화방송 인터뷰에서 “김 대통령이 탈당하면 노 후보의 고민이 해소되겠느냐”는 질문에 “이미 당정관계는 끊겨 있다. 추가로 탈당해야 한다는 것은 결국 인식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김 대통령이 탈당 결심을 굳혀도 괜찮다는 말이냐”고 거듭 묻자 “예”라고 답변했다. 탈당은 대통령이 판단할 일이며 대통령이 결심하면 반대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을 직접 압박하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자신은 DJ의 탈당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음을 시사해 청와대에 부담을 주는 노 후보 특유의 화법이다.
일반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미 조심스럽게 탈당 문제가 언급돼 왔다. 대통령 아들들 비리 의혹으로 여권이 수세 국면에 몰리자 그 해법으로 이 사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대통령과 당 사이의 끈이 끊어지면 당의 정치적 부담이 크게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게 이들의 기대다.
다만, 1997년 대선 때 신한국당 이회창(李會昌) 후보가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해 파란이 일었던 전철은 밟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탈당 결심과 시기 판단은 전적으로 김 대통령 몫으로 남겨 두자는 의미다.
청와대는 “지금 탈당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여러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여야 대선후보가 모두 확정된 뒤 중립적으로 선거를 관리하기 위해, 혹은 아들들 비리 문제를 수습하는 차원에서 결단이 이뤄질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신효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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