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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은크루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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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은크루마

입력
2002.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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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4월27일 아프리카 가나의 초대 대통령을 지낸 콰메 은크루마가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 병원에서 작고했다. 향년 63세. 은크루마는 사망하기 6년 전인 1966년 중국 베이징(北京)에 체류하던 중 본국에서 엥크라 장군의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실각했다. 그 뒤 은크루마는 죽을 때까지 조국 땅을 밟지 못했다.은크루마가 태어날 무렵 가나는 골드코스트(황금해안)라고 불리던 영국 식민지였다. 은크루마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과 영국 런던 대학에서 공부한 뒤 1945년 맨체스터에서 제5회 범(汎)아프리카회의를 조직하면서 독립운동과 정치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이어 서아프리카민족회의, 통일골드코스트회의, 회의인민당 등의 조직을 통해 반영운동을 이끌었다. 은크루마는 골드코스트 자치정부 구성을 위한 1951년 선거에 옥중 출마해 당선된 뒤 자치정부 수반이 되었고, 1957년 3월 골드코스트가 가나라는 국명으로 독립하고 세 해 뒤 국민투표로 가나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은크루마의 정치 이념은 범아프리카주의의 자장(磁場) 안에 일관되게 머물러 있었다. 범아프리카주의는 1900년 트리니다드토바고 출신 윌리엄스의 주도로 런던에서 처음 열린 범아프리카회의에서 점화한 전세계의 흑인 통합 운동이다.

초기에는 미국과 서인도제도 출신 흑인들이 이끈 이 운동은 1945년 맨체스터 대회 이후 은크루마의 지도력 아래 명실상부하게 아프리카 독립의 동력이 되었다.

비록 이 운동이 아프리카의 실질적 통일을 이뤄내지는 못했지만, 범아프리카주의는 은크루마가 표어로 내건 ‘아프리카의 개성’이나 프랑스어권 흑인 지식인들이 다듬어낸 네그리튀드(아프리카 흑인 문화의 가치관이나 정신) 같은 개념들을 흡수하며 아프리카인들의 주체성을 일깨웠다. 고종석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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