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힙합 음반'제미나이(Zemini)'을 출시하는 t(본명 윤미래ㆍ22)는 전에 없이 참한 모습이었다. 지난해 빅 히트했던 R&B ‘시간이 흐른 뒤’를 부를 때 했던 가닥가닥 땋은 머리는 단정한 단발 머리로 바뀌었고 그룹 업 타운과 듀엣 타샤니 시절의 헐렁한 힙합 바지와 큼지막한 티셔츠 대신 몸에 꼭 맞는 깔끔한 캐주얼을 입었다.힙합 음반을 만들었으면서 겉모습은 힙합과는 정반대였다. 언뜻 보면 가수가 아닌 평범한 20대의 모습에 더 가깝다.
t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이제는 굳이 힙합 차림을 하지 않아도 제가 힙합을 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자신감이다.
업타운의 멤버로 데뷔해 여자는 랩을 하지 않는다는 선입견을 깼고 이후 타샤니를 거치며 래퍼로서의 실력을 충분히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자신감보다 더 중요한 둘째 이유는 “힙합을 하면 어떠 어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힙합을 하면 꼭 힙합 바지에 땋은 머리를 해야 하나요? 치마를 입고도 얼마든지 힙합할 수 있어요.” 힙합의 기본은 그가 말하는 자유인지도 모른다.
흑인인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일찍부터 흑인 음악에 눈을 떴고 열네살 때부터 힙합을 해온 그가 보기에 한국에서 힙합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지극히 제한돼있다.
“미국 힙합이 본토 힙합이고 한국 힙합이 변종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지만, 미국에는 힙합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한국은 아닌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한다.
때문에 새 음반에는 일부러 여러 종류의 힙합을 담았다. 전형적인 하드 코어 힙합은 드물다. 멜로디가 두드러지는 힙합도 있고 재즈, 레게, 소울이 가미된 힙합도 있다.
곡마다 작곡가와 프로듀서를 달리 했고 일본 래퍼 DJ 하사베 더블, 드렁큰 타이거의 JK와 CB Mass 등 여러 사람이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처음으로 자신도 한 곡을 프로듀싱을 했다. 리듬을 타고 자유자재로 흘러나오는 그의 랩은 여전히 탁월해 듣는 사람의 몸을 흔들게 하지만 업타운과 타샤니 시절에 비하면 훨씬 부드럽고 유연하다.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그가 쓴 모든 노랫말도 여느 대중음악과 다르지 않다. 힙합하면 떠오르는 저항, 분노, 욕설 같은 것은 없다. 가장 중심이 되는 주제는 인생과 사랑이고 그 일부로서 힙합을 노래한 곡도 있다.
모두 그 자신의 일상과 생각에 근거한 노랫말이다. “t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 주고 싶기도 했다”고 한다.
TV를 기피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는 방송보다 콘서트에 더 주력할 생각인 그에게 음악은 가수인 자신을 알리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결국 모두가 힙합에 대한 애정과 고민의 결과다. 그에게 대중적인 사랑을 안겨준 것은 지난해의 R&B 곡들이지만, 그가 좀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맨 처음 시작이었던 힙합이다.
남들에게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좀더 많이, 넓게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음반을 만들었다. 5월 18일부터 시작하는 콘서트에 아마추어 래퍼들을 공모해 함께 무대에 서겠다는 생각도 그래서 나왔다.
현실적으로는 악보 없이 하는 랩으로 단기간에 남과 호흡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를 통해 힙합에 대한 저변을 넓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욕심은 더 있다. 힙합으로 세계 시장에 나서볼 작정이다. 동양의 여가수 중 R&B나 힙합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두 가지를 t만큼 능숙하게 해내는 사람이 드물어 여기저기서 제의를 많이 받았다.
특히 일본 음악 관계자들의 관심이 커 9월쯤 음반을 낼 계획이다. 아시아 시장에서 통하면 힙합의 고향인 미국으로도 진출해 볼 생각이다.
“홍콩의 브루스 리(이소룡)처럼 한국하면 떠오르는 대중 스타가 되고 싶어요.” 앙증맞은 덧니를 드러내며 씩 웃는 모습이 제법 믿음이 간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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