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지구촌의 윤리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사무총장 김여수)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원장 장을병)과 함께 26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개최하는 제1회 ‘공동가치 포럼’은 그 해답을 모색하는 자리이다.세계화가 진행되고 근대 산업문명의 근간인 개인주의, 도구적 합리주의, 과학주의의 역기능이 노출되면서 인류는 국가 단위에서 기존의 가치관과 윤리의식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빈곤, 환경 파괴, 핵 확산, 생명공학의 도전 등이 대표적 사례다.
세계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윤리, 공동가치에 대한 관심의 증대는 이 때문이다. 유네스코가 1999년 ‘21세기 윤리를 위한 공동의 틀’을 발표하고 유엔이 지난해를 ‘2001년 문명간 대화의 해’로 정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이번 포럼 개최는 이러한 국제적 움직임과 보조를 맞춰, 경제 주도의 세계화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윤리적ㆍ인문학적 대응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주제 발표를 맡은 정재식(鄭載植ㆍ72) 미국 보스턴대 사회윤리 석좌교수는 ‘세계화의 윤리적 문제와 전망- 지구촌의 맥락에서’라는 발표를 통해 “21세기 들어 세계화로 인해 지구촌이 물리적으로 하나가 돼가고 있는 반면, 민족과 종교가 연루된 문명의 충돌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며 인류를 하나로 묶어줄 공동가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종교간의 화해가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홍구(李洪九ㆍ68) 전 국무총리는 ‘세계화의 윤리적 문제와 전망- 한국의 맥락에서’를 주제로 발표한다. 그는 우리의 전통 윤리의식에서 세계화의 윤리를 모색하면서, 목말라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그가 누구든 물을 줘야 한다는 윤리적 직관과 평등주의 정신 등을 인류 공동이 간직해야 할 가치로 꼽았다.
유네스코 한국위는 10월에는 제2회 포럼을 열어 경제 환경 정보 시민 등 분야별 윤리 방안을 모색랄 계획이다. 또 2003년에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등 국제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을 초청해 세계화에 대한 성찰의 장을 마련할 예정이다.
◈ 포럼 발제 정재식 교수
‘공동가치 포럼’의 발제를 맡은 정재식 교수는 종교사회학 및 사회윤리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학자이다.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있다가 1990년 미국으로 건너간 정 교수는 종교와 사회변동, 그 중에서도 동아시아의 종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연구해 왔다.
그는 인류가 공동으로 따라야 할 윤리적 가치로 생명의 존엄성을 가장 먼저 꼽는다. 이번 포럼에서는 한 사회와 문화의 핵심이면서 사회 구성원을 서로 응집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종교의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종교는 남과 나, 안과 밖, 정통과 이단 식으로 세상을 양분화하고 서로 대립시키는 오류를 저질러 왔다”는 것이 정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종교, 계급, 가치, 민족 등의 구분짓기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만큼 종교간 화해와 협력을 통해 인류적 가치의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한국의 종교에 대해서는 “개인의 영혼, 욕구만 강조하는 기복신앙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며 “우리 교회, 우리 절, 우리 교단에만 집착하다 보니 이상이나 초월적 신앙은 찾아볼 수 없고 세속화한 측면이 커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유교의 노인 공경, 후손에 대한 책임, 가족적인 유대, 공동체에 대한 책임 등을 강조하는 문화가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서구 문화를 보완해 인간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교수는 이번 포럼 참석 외에 연세대 등에서 강연하고 5월 8일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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