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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현장 / 의료시장 개방

입력
2002.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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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대한치과협회등 치과의사계가 발칵 뒤집히는 소동이 벌어졌다. ‘OCA’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미국의 한 치열교정병원기업이 국내 진입을 노리고 시장조사와 함께 제휴할 치과병원을 찾고 있다는 소문이 번졌기 때문이다.이 회사는 미국에서 치과대학을 졸업한 국내개업의들과 접촉, 연봉협상까지 벌였다는 설까지 신빙성 있게 나돌았다.'Orthodontic Center of America'의 약어인 OCA는 번역하자면 미국치아교정센터로 미국뿐 아니라 일본 멕시코 스페인에 지점을 갖고 있는 치열교정 다국적 병원기업. 외국 병원자본 침투에 무감각했던 국내 의료계에 일파만파의 충격을 던진 사건이었다. ≫

◈ 의료시장 개방 현실로

200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보건ㆍ의료서비스 수준은 세계 58위(세계보건기구(WHO) 평가). 1위는 프랑스, 일본 10위, 영국 18위 등으로 선진국의 의료수준이 우리나라보다 1~2단계 앞선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 선진병원기업들의 국내 상륙 소식은 이제 단순한 충격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세계무역기구(WTO)체제에 따른 ‘도하 개발어젠더’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구체적인 시장개방 협상이 내년부터는 본격화한다. 이에 따라 2004년 이후에 쌀 시장 처럼 의료시장도 문을 열어젖힐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초 삼성서울병원 이종철원장의 의미심장한 경고는 개방을 앞둔 국내 의료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낸다.

이 원장은 삼성의료원보에 실린 신년사를 통해 “호시탐탐 국내상륙 기회만 노리던 해외 선진의료시스템과 자본이 몰려들 채비를 마쳤다”며 “지각변동에 가까운 생존경쟁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의료시장 개방과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치과쪽 뿐만 아니라 전문의학 분야에서도 미국의 유명 암전문 병원이 국내 병원과 연계, 연구기관을 설립을 추진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미국 의사협회 등 의료단체와 병원기업들이 이미 중국과 한국시장을 겨냥한 시장성 조사를 마쳤다는 소식도 들린다.

대한병원협회 성익제 사무총장은 “4~5년전 미국 병원계에서 한국 주재 상무관등을 통해 한국의 의료시장규모와 의료수요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면서 “한국 내부사정은 꿰뚫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이나 서울중앙병원등 국내 유수종합병원들이 너나 할 것없이 미국 유명종합병원과 연계를 맺고 있는 경향도 의료시장 개방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미국측은 지난 95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당시 병원경영분야에 대한 시장 문을 열 것을 요구, 의료시장 개방 부문이 포함된 도하개발어젠더(일명 도하라운드)에서 병원자본 참여압력을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 태풍이냐 기우냐

현행법상 외국 의료기관이 국내에서 진료행위를 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다만 의료법상 의료기관은 영리법인이 될 수 없고 미국의 10분의 1 수준인 의료수가체계하에서 진료행위를 벌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사실상 진입장벽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도하라운드 협상과정에서 이런 제한이 완전히 풀릴 경우 국내 의료체계는 대규모적인 지각변동이 불가피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용각 연구원은 “의료선진국 병원자본의 유입과 병원체인의 국내진출은 경쟁력이 취약한 중소병원의 경영악화와 도산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높은 연봉을 무기로 국내 전문의료인력을 끌어들이면서 국내병원의 인력난을 가중시킬 우려도 적지않다”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차별화된 진료를 받는다는 명목으로 외국까지 가는 환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진 의료기관들이 몰려올 경우 파장은 의외로 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기관의 개설요건, 영리목적 환자알선금지, 영리추구금지등 외국병원자본 침투를 막는 의료법상 장벽들을 제거해야 하는데다 국내의료시장에서 적정한 이윤을 남길 수 있을 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아 시장개방이 당장 지각변동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 의료계ㆍ정부 대응

정부는 올 1월부터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 어젠더 보건복지야 대책위원회를 설치,시장개방에 따른 파급효과 등에 대한 연구와 함께 의사협회 병원협회등 관련단체에 대한 의견수렴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오는 6월말 미국이나 중국 등 세계 각국이 우리나라에 요구할 시장개방 내용을 보아가며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상대국이 어떤 요구를 해 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한 회원들의 의견수렴작업을 벌이고 있고 구체적인 액션을 취할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해외 원정치료 年 1兆원 추정

암치료 등을 위해 의료선진국에 원정치료를 받는 의료수요는 어느 정도일까.

최근들어 해외 원정진료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지만 정확한 통계를 잡기는 어렵다. 대부분 진료목적이 아닌 관광목적의 비자를 받아 미국 등 의료선진국 병원을 찾기 때문이다.

대한병원협회도 지난해 서울대 보건대학원에 의뢰, 해외원정진료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연간 해외치료규모는 1조원 안팎이라는 것이 의료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해외원정치료가 크게 늘어나고 있고 치료비도 매우 비싸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분석의 ‘근거자료’.

지난 2000년 삼성 이건희(李健熙)회장이 폐암수술을 받으면서 잘 알려진 미국 텍사스 의대 M D 앤더슨센터 등 유명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경우 최소 1억원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통비와 체류비 등을 따질 때 금액은 훨씬 더 늘어난다.

해외진료 알선업체에 따르면 한국인 통역까지 서비스를 하고 있는 앤더슨 센터의 경우 한달에 10~20명 정도, 1년에 200명 이상의 한국인이 암 수술을 위해 이곳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인이 심장이나 암 수술을 위해 많이 찾는 미국의 유명병원은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이나 심장수술분야에 정통한 UCLA의대병원등 10여 곳.

특히 이들 유명 병원은 대부분 IPC(국제환자센터)를 두고 각국 환자들의 통역문제를 해결해주는 등 고가진료를 받는 외국환자들의 편의제공을 하고 있다.

해외진료를 연결하는 업체관계자는 “의료보험이 안돼 현찰을 싸 들고 오는 외국인 환자들은 병원입장에서 중요 고객”이라며 “한국 환자들도 치료나 생활에 전혀 어려움이 없을 만큼 서비스가 잘돼 있다”고 말했다. 이런 병원들이 한국으로 몰려올 경우 의료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언제 개방하나

2001년 11월14일 카타르 도하에서 합의된 세계무역기구(WHO)의 시장개방을 위한 다자간 무역협상합의를 일컫는 것으로 ‘도하라운드’라고도 한다.

도하라운드의 합의문에는 회원국들이 2005년 1월1일까지 농업 공산품 서비스업 반덤핑보조금 분야의 협상을 끝내도록 돼 있으며, 12개의 서비스부문에는 의료시장 개방과 관련한 보건의료서비스가 포함돼 있다.

각 회원국은 6월말까지 각 회원국이 개별 회원국에 시장개방 요구안인 이른바 양허요청안(Requestlist)을 내고 각 회원국은 내년 3월말까지 어느 수준까지 개방할 수 있다는 양허안(Offer list)를 제출하게 된다.

협상시안은 3년으로 2005년 1월1일까지 모든 협상을 완료, 2006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될 것으로전망하고 있다.

의료서비스의 시장개방은 ▦원격진료 서비스 형태의 국경간 공급 ▦해외원정치료에 해당하는 해외소비 ▦해외의료기관의 설립등 자본이동을 의미하는 상업적 주재(駐在) ▦의료인력이동에 해당하는 인력이동등 4개 유형이 있다.

4개 시장개방 유형 중 국내 의료서비스가 가장 경계하고 있는 것은 해외의료기관 국내 설립을 핵으로 한 상업적 주재.

일괄타결방식인 협상구조로 볼 때 공산품 반덤핑등 다른 협상분야에 밀려 의료서비스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문을 더 열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료자본의 이동이나 해외의료기관의 설립이 자유로워질 경우 국내 의료체계에 엄청난 지각변동이 예상된다”며 “미국 등 의료선진국으로 부터의 의료시장 개방압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정진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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