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정지용 ‘향수’에서)한국현대시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시인 정지용(1902~?)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지용제’가 올해는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층 의미있고 성대한 잔치로 열린다.
해마다 시인의 고향인 충북 옥천군에서 개최했던 것을 올해는 서울과 옥천에서 두 차례 행사를 열기로 했다.
지용회(회장 이근배)가 주최하고 한국일보사가 후원하는 행사로 5월6일 오후5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문화사랑방에서 ‘서울지용제’가, 5월 9~12일 옥천군 옥천읍 관성회관에서는 ‘옥천지용제’가 개최된다.
‘서울지용제’는 제14회 지용문학상 시상식과 정지용의 시 ‘백록담’을 모티프로 삼은 무용, 정지용의 시 ‘호수’와 ‘산엣색시 들녘사내’ 등에 곡을 붙여 노래하는 합창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마련됐다.
올해 지용문학상 수상자는 시인 김지하(61)씨, 수상작은 ‘白鶴峰(백학봉)ㆍ1’이다. 김지하씨는 “정지용 탄생 100주년에 지용상을 받게 되니 기쁘다기보다 두렵다. 정지용의 시 ‘백록담’의 눈부신 청정감을 누구도 감히 견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제 와 가만히 짚어보니 60여 년 내 인생은 한마디로 떠돌이였고, 나를 꿰뚫는 것은 떠나온 고향에 대한 아픈 ‘향수’였다”면서 “앞으로 지용시를 내 나름으로 다시 읽고 새롭게 해석할 것”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김씨의 수상작은 백양사가 있는 전남 장성군 백암산의 백학봉에서 건진 시상을 옮긴 작품이다. ‘멀리서 보는/ 백학봉// 슬프고/ 두렵구나// 가까이서 보면 영락없는/ 한 마리 흰 학,’ 시인은 백학봉 봉우리 아래 사리탑에서 고통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본다. 시인의 눈에는 병으로 여윈 스님의 얼굴도 아름답다. ‘고통과/ 고통의 결정체인/ 저 검은 돌탑이/ 왜 이토록 아리따운가/ 왜 이토록 소롯소롯한가// 투쟁으로 병들고/ 병으로 여윈 知詵(지선) 스님 얼굴이/ 오늘/ 웬일로/ 이리 아담한가/ 이리 소담한가’ 고통과 투쟁이 아리따움과 소담함을 어떻게 함께 담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시인은 문득 깨닫는다. ‘아/ 이제야 알겠구나/ 흰 빛의/ 서로 다른/ 두 얼굴을.’
서울지용제에서는 특히 후배 시인들의 목소리로 정지용의 시를 들려주는 낭송회도 마련됐다. 시인 김종해씨가 ‘바람1’ 홍윤숙씨가 ‘고향’ 유안진씨가 ‘불사조’ 이수익씨가 ‘유리창’ 오세영씨가 ‘옥류동’ 문정희씨가 ‘풍랑몽’ 등을 낭송한다. 박인수씨와 이동원씨가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여 유명해진 ‘향수’를 노래한다.
‘옥천지용제’에서는 유종호 연세대 석좌교수와 최동호 고려대 교수 등이 참가하는 ‘지용문학포럼’과 작품 낭송회 등이 열릴 예정이다.
또 5월 15일에는 서울 사간동 대한출판문화회관에서 ‘지용 세미나’가, 18일에는 육군사관학교에서 ‘지용 심포지엄’이 개최돼 정지용 탄생 100주년 축제의 열기가 지속될 전망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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