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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후의 여성탐구] 방송인 백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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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후의 여성탐구] 방송인 백지연

입력
2002.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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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다 해왔니?”논어를 읽고 써오라고 했던 선생님은 기가 막힌 표정이다. 방학 숙제는 보통 5일이면 끝낸다. 논어 때문에 15일이나 걸렸다.

공부하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앵커가 된 첫 해 1년 동안 외출하지 않았다. 새벽 뉴스 진행하면서 아이 키우고 주간대학원을 다녔다. 그가 백지연이다.

대학 졸업 전에 입사, 수습기간 중 MBC 9시 뉴스데스크에 발탁. 11년 간 최장수 앵커. 1998년 여대생이 닮고 싶은 인물 1위.

현직 앵커가 아니면서 2001년 MBC 베스트 오브 베스트 앵커 부분 남녀 통틀어 1위. 초등학교 5학년 KBS ‘누가 누가 잘하나’ 장원. 동요, 성악, 글짓기 그리고 공부 무엇이든 잘하는 아이.

기자인 아버지는 자식에게 자유방임이 원칙이다. 몸이 약해 체육시간을 견학한 적이 많고 어쩔 수 없이 눈에 뛰는 아이.

어머니는 공부보다 ‘건강’과 ‘겸손’을 강조한다. 욕심이 없고 약해 보이는 어머니와 그 반대인 딸. 무대에서 쳐다보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는 딸과 행여 잘못 할까 봐 보지 못하는 어머니. 지금도 생선가시를 발라주기 위해 돋보기를 쓰신다.

초등학교 2학년경 어머니는 당신의 유학을 구체화했다. 세 언니와 달리 막내는 난리를 친다. 성취를 포기하는 어머니.

그 어머니와의 이별을 막기 위해 감시하는 딸. 두 모녀는 같은 시기에 같은 정도의 아픔을 경험한다. 장남에게 시집와 넷째 딸이 아들인줄 아셨던 어머니. 미역국도 안 들었다. 그 딸이 유학을 막는다.

반대급부로 딸은 어머니를 기쁘게 해야만 한다. 앵커시절 휴일이면 친구보다 어머니가 우선이다. 보상해야 하는 책임과 ‘별종’은 그래서 관련 있다. 어머니가 원하지 않는 보상을 위한 강박적 의무가 삶을 지배한다.

앵커는 음성, 외모, 발음, 카리스마 그리고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수습시절 9시 앵커가 된 것은 타고난 재능이다.

음성이나 발음 능력이 그렇다. 카리스마와 전문성은 후천적으로 습득된다. 성취는 어머니와의 분리를 막을 수 있는 무의식적 장치였다.

그 성취는 고통스런 완벽성을 필요로 한다. 더 높아져야 더 안전하다. 높아가는 성취는 차서 넘치는 당당함과 카리스마를 동반한다.

큰 키와 화려한 외모 그리고 강박적 성취가 있다. 주목과 오해는 구조적으로 동반된다. 선생님께 잘 보이려는 태도와 외모로는 절대로 장기간 계속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학창시절부터 경험에 왔던 주변의 설명하기 힘든 미움은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만큼의 경계의식은 있다. 완벽을 향한 강박적 성취는 가족도 이해하기 어려운 외로운 투쟁이다.

부모님은 강요하지 않았고 어린 딸은 개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끝없는 성취를 이뤄야만 하는 딸이 자랑스럽지만 그 욕심은 이해되지 못한다.

딸의 언어로는 부모님에게 자기를 설명할 수 없다. 못 이루면 무의식적 자기 상실을 겪고, 잘해도 칭찬은 없다. 성취는 생존의 문제지만 집에서는 별난 아이다.

외로움은 일찍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처지에서 이겨나갈 방법을 알려 줄 선생님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면이 독자적 생존을 가능케 한다. 더 큰 성취와 당당함과 함께. 어차피 기댈 곳은 없다.

대학입학과 함께 얻은 ‘브룩쉴즈’라는 별명은 부담스러웠다. 정원은 56명, 강의는 70명이 듣는다. 주목과 시선. 남자들의 접근은 불편하다.

합격한 날 따라온 의대생이 두려웠다. 계속되는 스토킹. 면도칼이 우편으로 보내진 적도 있다. 대응은 자신을 철저히 냉각시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심볼이 되어버린 차가움 그리고 도도함의 인상. 그 뒤에는 스무 살도 안된 어린 여성의 남성에 대한 방어적 두려움이 숨어있다. 그 고통을 세상 누구도 공감하지 않았다. 바로 위 언니가 등하교를 같이 한다.

여대생들의 선호도 1위. 일반 대중들의 평가는 좋다. 하지만 공격하는 사람도 있다. 그 공격의 근거가 객관적으로 증명된 적은 없다. 성취에 대한 강박적 의무, 경계의식과 일부 남성에 의한 공격적 접근은 특정 상황에서 정서적 차가움을 유발한다.

그 차가움은 공격의 원인이 된다. 노조 파업 때 회사와 노조 양쪽이 원한다. 어디를 선택하든 결과는 치명적이다. 극단적인 공격이 기다린다. 사회적 고통은 공감 받지 못하고 아픔도 공유되질 못한다. 백지연을 상징하는 화두다.

악의적 소문이 인터넷에 올려진다. 버스 옆 좌석 사람 말을 듣고 글을 올린 남자. 있지도 않은 친자확인 소송. 사실처럼 보도한 기자. 위협이 아이에게 향하고 있다. 더 이상 위협과 면도칼로 상징되는 남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

한 아이의 어머니다. 어릴 적처럼 수동적 피해자일 수는 없다. 그 때의 고통, 억울함 그리고 분노. 잘못 없이 당해도 당한 자가 잘못 없음을 증명해야 하는 기막힌 현실.

2000년 2월 재판에서 승리한다. 어떤 남자도 지켜주지 못한 그녀의 삶. 그녀의 대응이 과장되고 피해 의식적이고 설사 신경질적이라도 비난될 순 없다.

아이는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혼자인 그녀가 최소한 안전하게 아이를 키우게 해주어야 했다.

잘났지만 아픔이 공감되지 못한 여성. 가까이서 보면 꼭 무겁지 만은 않다. 이제 그녀도 기댈 곳을 찾은 것 같다.

●약력

▲1964년 서울출생

▲1988년 연세대 심리학과 졸업

▲1987년 MBC 입사

▲1988~1996년 MBC 뉴스데스크 앵커

▲1998년~현재 프리랜서 방송인,MBC'우리시대'MC,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수상경력 :1991년 한국방송대상 앵커상 수상,2001년 MBC 창사 40주년 선정 'BEST앵커상'수상

▲저서 :MBC뉴스 백지연입니다(1994),앵커는 닻을 내리지 않는다(1996) 나는 나를 경영한다(2000)

■ 지인들이 본 백지연

“수더분하고 얌전하기보다는 도회적이고 공격적이다. 적극적인 데다 자기색깔이 분명하다. 그런 류의 개성을 갖춘 사람이 어디 흔한가.”

‘뉴스데스크’시절부터 현재 ‘우리시대’까지 10년 가까이 그를 알고 지내온 김승한 MBC시사제작국장이 보는 백지연의 모습이다.

선후배를 대할 때도 누구에게나 두루뭉실하게 잘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김 국장은 “호ㆍ불호가 분명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정상에 있으면서도 만인을 포용하는 ‘여성지도자’ 형이 아니라 ‘도도하다’ ‘건방지다’는 둥 썩 유쾌하지 않은 소리도 들려온다.

“그런 평가를 받을 여지가 있다. 앵커가 선망의 대상이자 비난의 표적이 되기 좋은 자리가 아닌가.

다른 일을 했으면 그렇게 시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컨대 백지연의 ‘수난’은 개성과 직업적 특성이 복합적으로 상승작용을 한 결과라는 해석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할 정도로 속을 터놓고 지낸다는 선배 이미경(클린피부과 원장)씨는 친소관계가 분명한 백지연의 처신이 오해를 빚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고초를 겪으면서 양적인 만남은 피하는 듯 하다.

가까운 사람한테만 속을 내보인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친밀감을 느끼는 ‘푼수 같은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일을 시작할 단계부터 예상되는 난관, 최종 결과까지 계산할 정도로 치밀하다.

하지만 허물없는 친구에게는 의외의 모습도 보인다. 이씨는 “옆에서 보기에 간지러울 정도로 남편에게 애교스럽다.

뉴스를 진행할 당시에도 직접 수산시장에 장바구니를 들고 나설 정도로 소박한 면도 있다.

퓨전레스토랑을 차려도 될 만큼 요리솜씨도 뛰어나다. 어려울 때 곁에 있어주고,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의리가 있다” 고 말한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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