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 없는 구조개혁’을 내걸고 출범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이 26일로 1주년을 맞는다.그러나 정권 출범 당시 변화에의 기대로 80%대를 웃돌았던 정권 지지율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40%대로 급강하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의 20~21일 조사에서는 “지지한다”가 47.9%, “지지하지 않는다”가 40.9%였다. 고이즈미 총리가 입버릇처럼 내세우는 개혁의 실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61%가 “가능하지 않다”고 답해 불신감을 드러냈다.
“자민당을 깨부술 각오”라며 개혁정치를 내세웠던 고이즈미 총리가 1년 간 실제로 한 것을 보면 자민당 보수 본류의 숙원사업을 앞장서 해결했을 뿐이라는 인상이다.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연례화, 자위대 활동을 강화하는 유사(有事)법안 국회 상정, 언론계가 ‘미디어 규제법안’으로 규정해 맹반대하는 인권옹호법안과 개인정보보호법안의 국회 상정 등 자민당의 해묵은 숙제 보따리를 고이즈미 총리가 특유의 ‘결단력’으로 풀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가 구조개혁의 상징으로 의미를 부여했던 우편사업 민영화 법안과 세제개혁 등은 자민당내의 반발에 부딪혀 지지부진하거나 알맹이가 빠져가는 상태다. 우편사업 민영화 법안은 23일 당내 심의에서 당이 찬성의견을 뺀 채 국회 상정을 허용하는 기형적인 결정이 나왔다.
고이즈미 총리는 “만약 자민당이 법안을 깔아뭉갠다면 고이즈미 내각을 깨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자민당이 고이즈미 내각을 깰 것인가, 자민당을 깨부술 것인가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높을 때는 볼 수 없었던 노골적인 당내 저항이 표출된 것이다.
총리 관저 주도, 관료 주도의 배제, ‘족의원’ 정치의 배제 등 그가 정치개혁의 요체로 내걸었던 이른바 ‘고이즈미 3원칙’도 구호는 요란했지만 실제로 작동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가 당에 요구했던 정치인과 관료의 접촉 제한, 정부 제출법안의 자민당 사전승인 관행 폐지, 공공사업수주 업자로부터의 정치헌금 제한 등은 당내 논의가 모두 미루어지고 있다.
당내 파벌 기반이 취약하고 오로지 국민의 지지율에 의존했던 고이즈미 총리의 정치력이 ‘민의’와 ‘자민당 기득권 세력’ 사이에 끼어 날로 취약해지고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일본 언론들은 “흔들리는 정권”이라거나 “정권의 지향점이 무엇이냐”는 등 정권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고이즈미 총리 자신이 유치원 방문에서 자전거를 타 보이고,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선술집에 가는 등 인기를 좇는 ‘극장 정치인’일 뿐 진정한 개혁비전을 가진 지도자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구호는 요란했지만 2001년도 기업도산이 2만 건, 부채총액이 16조엔에 이르는 경기침체가 호전의 기미가 없고 금융불안도 완전히 가시지 않는 등 경제가 나아지는 것을 피부로 느끼기 어렵다는 것도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주는 중요한 요인이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큰 것이다. 고이즈미 인기에서도 거품이 빠져가고 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고이즈미 정권 사면초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취임 직후 국회 답변을 통해 “파벌의 폐해는 인사권과 자금공급, 선거지원 등이지만 점차 당 중심이 될 것”이라며 “파벌 회합을 열어도 의미가 없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개혁을 이루자면 자민당 내 파벌정치를 누르고 당 중심, 나아가 당 총재인 총리 중심의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한동안 고이즈미 총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는 당내에서 불만이 있어도 반대 목소리가 겉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당내 파벌들은 고이즈미 총리에 대해 지지도 하지 않고, 내놓고 반대도 하지 않는 그야말로 ‘팔짱을 끼고 있는 상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달 들어 자민당 파벌들은 고이즈미 총리의 ‘당 중심’ 철학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정치자금을 모으기 위한 후원파티를 경쟁적으로 열며 결속을 다지고 있다.
이를 두고 요미우리(讀賣)신문은 24일 “고이즈미 내각의 지지율 저하를 계기로 각 파벌이 ‘포스트 고이즈미’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증거라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고 촌평했다.
취임 초기에는 고이즈미 개혁 노선에 대해 ‘비판적 지지’ 입장을 취하며 적극적으로 공격을 하지 않던 제1야당 민주당은 최근 들어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를 요구하며 ‘내각 타도’로 선회했다.
“마땅한 후임 총리감이 없어 그냥 고이즈미 총리가 계속하는 것”이라는 자민당의 사정을 겨냥해 대중적 인기가 높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郎) 도쿄(東京)도지사의 신당 창당설이 나도는 등 일본 정계는 사방에서 고이즈미 정권을 흔들고 있다.
28일 실시되는 중의원 와카야마(和歌山)2구 및 참의원 니가타(新潟) 보궐선거, 도쿠시마(德島)현 지사 선거 결과가 고이즈미 정권의 앞날을 점칠 수 있는 분기점이 될 것이란 전망도 많다.
/도쿄=신윤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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