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고 치는 대탈주극.’ 최근 실시간으로 상영되고 있는 ‘첩보 영화’의 제목이다.그 무대는 한국과 동남아, 미국이고, 오랜 수사경험으로 쌓인 각종 노하우로 필사의 도주행각을 벌이는 전직 경찰 간부가 주인공이다.
그를 쫓는 조연은 무시무시하다는 한국의 검ㆍ경.
그의 아슬아슬한 탈출로 시작된 영화의 백미는 미 뉴욕의 JFK공항에서 벌어지는 장면.
뉴욕 잠입 사실을 알고 공항에서 미리 대기하던 체포조를 완벽하게 따돌리고 유유히 잠적하는 대목은 헐리우드의 첩보영화를 능가한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 지 관객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영화를 지켜보던 관객들이 너나할 것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에이, 유치하다. 자기들끼리 다 짜고 하는 게 눈에 보이잖아.”
’최규선(崔圭善)게이트’에 연루돼 미국 도피중인 전 경찰청 특수수사과장 최성규(崔成奎) 전 총경을 하루빨리 잡아 국내로 송환해야 할 이유는 한둘이 아니다.
수뢰와 대가성 주식 보유 의혹 등 개인 비리는 차치하고서라도 청와대 주도 밀항설의 진실 여부를 밝혀줄 유일한 인물인데다 도주극의 ‘보이지 않는 손’ 개입설을 해명하기 위해서도 그를 데려와야 한다.
그런데도 사법당국의 움직임은 소걸음보다도 느리다. 검찰은도주 열흘이 지나도록 “구체적 범죄혐의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주장만 되풀이하며 체포영장 발부에 늑장을 부렸다.
경찰은 한 술 더 뜬다. 이팔호(李八浩) 경찰청장은 23일 기자간담회에서 “파면으로 경찰 조직을 떠난 사람인데 어찌 하겠느냐”고 했다.
경찰청 수사국장이라는 인사는 “(최 전 총경이 도주하는 과정에서) 그와 통화한 사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서”라며 사흘씩 통화사실을 숨기다 뒤늦게 공개하기도 했다.
첩보영화가 이런식으로만 흐르다가는 영화 제작자들은 모두 파산하고 극장은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사회부 이동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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