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4월이 되면 나는 춘계 대학축구연맹전을 기다린다. 따사로운 햇살을 가득 안고 젊음이 넘쳐흐르는 축구장의 열기를 호흡하는 것, 이게 바로 내 일상을 가장 활기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대학연맹전은 마음먹기에 따라 하루에도 서너 경기는 볼 수 있으므로 ‘본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다가 너무나 마음에 드는 팀과 선수가 나타나면 결승전까지 쫓아가면 된다.(그런데 해마다 그런 팀과 선수가 나타난다.)
올해 춘계 대학연맹전은 속초에서 열렸다. 축구 못지 않게 바다를 좋아하는 나는 호시탐탐 속초로 달려갈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신문을 보니 청천벽력 같은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숭실대의 미드필더 김도연 선수가 경기 도중 쓰러져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축구가 아무리 거친 경기라 해도 경기 중에 선수가 사망하는 일은 (적어도 국내에서는)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혈기왕성한 대학 축구 선수가 경기 중에 숨을 거두다니 이게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언론 보도를 보니 경기장의 여건이 최악이었다는 것, 사고 당시 응급 요원과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 등 ‘단골 메뉴’가 되풀이되고 있다.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므로 김도연 선수의 직접적인, 그리고 구체적인 사망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이 사건에 대해 누가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불행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 어느 누가 특별히 나태하거나 악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하는 축구 문화, 그런 사회 문화가 자리잡지 못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어떻게 하더라 따위의 예를 들 것도 없다. 그저 우리가 운동장에서 달리는 선수들의 부모, 형제, 애인이라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 보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이번 월드컵에서 적어도 개막 경기와 우리나라 경기만큼은 (코스타리카와 평가전 때 그랬던 것처럼) 고 김도연 선수를 기억하는 묵념 시간을 가지길 제안한다. 월드컵 무대에 서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을 한 젊은 축구 선수의 넋을 그렇게나마 위로해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찌 고개를 들고 축구를 사랑한다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정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 다시는 이런 말도 할 필요가 없도록 하자. 한없이 부끄럽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고 김도연 선수의 명복을 빈다.
강석진 고등과학원 수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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